스타일의 전성시대는 곧 스타일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AI 시대 사진에서 스타일의 가치 하락과 주제의 귀환

AI는 스타일의 문턱을 낮춘 것이 아니라, 스타일의 희소성을 무너뜨렸다.
이제 톤과 질감만으로는 사진의 가치를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남는 것은 결국 무엇을 왜 찍느냐의 문제다.
사진은 오랫동안 무엇을 찍는가보다 어떻게 보이게 만드는가의 경쟁 속에 있었다. 특히 디지털 환경과 SNS, 그리고 이미지 기반 플랫폼의 확산은 사진을 점점 더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질감, 톤, 색, 명암, 후보정 방식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곧 작가의 정체성과도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사진가는 프레임보다 색으로 기억되었고, 어떤 작업은 내용보다 무드로 먼저 소비되었다. 이처럼 현대 사진은 분명 스타일의 전성시대를 지나왔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스타일이 가장 강력한 가치로 소비되는 이 시대는, 역설적으로 스타일의 종말을 준비하는 시기일 수도 있지 않은가. 과거에는 하나의 톤과 질감, 혹은 특정한 색채 감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의 시행착오와 기술적 숙련, 그리고 감각의 축적이 필요했다. 하지만 AI는 이러한 과정을 압축하거나 생략한다. 이제 스타일은 더 이상 도달해야 할 미학적 성취가 아니라, 선택해서 즉시 입힐 수 있는 옵션이 되어간다.
AI가 특히 강력한 것은 내용의 창조보다 형식의 모방과 재구성에 있다. 다시 말해 AI는 세계를 깊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흉내 내는 데에는 매우 능숙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진의 스타일은 치명적인 변화를 맞는다. 한때 희소성과 축적의 결과였던 스타일은 이제 누구나 몇 번의 클릭만으로 호출할 수 있는 값싼 시각적 소비재처럼 인식되기 시작한다. 독창적 스타일의 권위는 유지되기보다 복제 가능성 앞에서 빠르게 약화된다.




<AI로 변환한 스타일 이미지의 예시>
이 변화는 단순히 “AI가 사진가를 위협한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사진이 평가되는 기준 그 자체가 이동한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사진의 의미가 다소 빈약하더라도 강력한 형식적 인장만 있다면 일정한 미적 인정과 소비가 가능했다. 그러나 스타일이 대량 복제 가능한 것이 되는 순간, 형식만으로는 더 이상 오래 버티기 어렵다. 눈길을 끄는 톤, 독특한 질감, 감각적인 컬러는 여전히 사람을 멈춰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의 지속적 설득력을 확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다시 중요해지는 것은 사진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다. 작가는 왜 이 장면을 택했는가, 왜 이런 방식으로 현실과 관계 맺는가, 이 이미지가 세계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어떤 경험과 사유가 이 사진의 바닥에 깔려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스타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타일이 더 이상 중심 가치가 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스타일은 작품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을 전달하는 하나의 표면 혹은 인터페이스로 위치가 낮아진다.


이 지점에서 19세기 사진의 발명 이후 회화가 겪었던 전환은 매우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된다.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회화는 현실 재현의 중요한 기술이자 직업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은 회화가 오랫동안 담당해온 재현의 의무를 급속히 대체했다. 그 결과 회화는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복제하는가의 경쟁에서 밀려났고, 바로 그 밀려남 속에서 오히려 자기 내부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 개념미술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양식 변화가 아니라,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난 뒤 비로소 가능해진 주제와 내면의 폭발이었다.
오늘날 AI가 사진에 가하는 압력도 이와 유사할 수 있다. 물론 사진은 회화와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AI가 사진의 스타일, 무드, 표면적 완성도를 너무 손쉽게 생산하고 복제하게 만들수록, 인간 사진가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영역은 점점 더 내용과 관점, 경험과 문제의식으로 이동하게 된다. 다시 말해 AI는 사진에서 스타일의 시대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만으로는 설득될 수 없는 이후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사진가에게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해방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사진은 아름다운 결과물, 감각적인 톤, 세련된 무드, 인상적인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일의 희소성이 무너진 시대에는 오히려 작가가 무엇을 보고, 왜 그것을 문제 삼으며, 어떤 삶과 세계관으로 이미지를 조직하는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술적 세련됨이 민주화될수록, 사유의 깊이와 주제의 밀도는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비교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스타일의 전성시대가 아니라, 스타일 중심주의의 마지막 불꽃일 수 있다. 겉으로는 온통 스타일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타일의 가격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스타일은 더 많이 보일수록 덜 특별해지고, 더 쉽게 얻을수록 덜 권위적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진은 다시 묻게 된다. 당신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당신의 사진은 단지 보기 좋은가, 아니면 끝내 남을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가.
결국 AI 시대 이후의 사진은 스타일이 없는 사진이 아니라, 스타일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사진의 시대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값싸게 생산될 수 없는 것의 영역을 끝까지 밀고 들어가는 일이다. 즉 사진은 다시 내용, 관점, 맥락, 태도, 세계 인식의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사진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본질적인 예술이 될지도 모른다.



현실을 고스란히 담는 사진이 인공지능(AI)과 만났을 때 말씀 주신 바와 같이 창작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면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사진과 AI가 만났을 때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진이 담는 의미를 왜곡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왜곡된 사실을 믿게 하는 의도의 위험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말씀 주신 예술적 측면에서 사진을 통해 ‘촬영자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점과 역설적으로 이러한 생각이 SNS를 통한 무분별한 소비에서 잊혀진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소비 행태 속에서 조회수 확보와 관심 증대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감하게 사실을 조작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 수많은 쟁점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고찰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말씀처럼 선한 의도를 가지고 AI를 활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와 반대로 대중을 특정 방향으로 선동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는 현상이 매우 많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에서 초거대 AI 모델인 ‘엔티티(Entity)’가 세상을 조작하는 모습이 더 이상 상상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해당 영화는 매우 과장된 측면이 있으나, 더 이상 우리가 AI를 통한 조작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조작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 되기에 이르러서, 각국은 공직선거와 정보통신에 관한 법률에서 AI를 활용한 조작에 대한 규제 조항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를 신설하였고, 공직선거법 제82조의8(딥페이크영상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마련하였으며,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불법정보 및 허위조작정보의 유통금지 등) 등을 개정하여 2026년 7월 7일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과거 고가의 장비 마련, 필름 현상의 어려움 등으로 사진이라는 예술이 한정적인 영역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거대 AI 언어 모델(LLMs)과 같은 기술을 ‘누구나’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예술의 영역이었던 사진도 ‘누구나’ 찍을 수 있고 창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진과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 속에서 AI가 사진에 가하는 ‘부정적인’ 압력에 의하여 사진이라는 예술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값싸지지 않도록, 그리고 사진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 우리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한 번 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메시지를 던져봅니다.
말씀처럼 AI 문제는 창작의 확장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신뢰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사진인지 AI 이미지인지 자체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태도와 신용을 가진 작가인지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겠지요. 결국 눈길을 끄는 이미지일수록 작가와 출처를 함께 검증하려는 흐름이 점점 강해질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우리 인간생활 전반적인 영역에 AI의 융단폭격(?)이 퍼부어지고,
‘멀지 않은 미래, 과연 우리 인간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아니 할 수 있는가?’
라는 자조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있는 시대.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다 퇴각하는 듯한
두려움이 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진이라는 예술 영역 또한.
여러가지 절망적 물음표가 던져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권학봉 대장님의 이글을 읽고.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다시 본질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희망의 싹을 보게 된 느낌입니다.
“남는 것은 결국 무엇을 왜 찍느냐의 문제다”
AI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설렘을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AI의 전지전능앞에 무력해져가는 듯한, 우리 인간이 찍어내는 사진이
기술적 영역을 넘어, 다시 예술적 영역에서 회귀(?)할 수 있는 중요한 본질적 질문. 그 단초.
[즉 사진은 다시 내용, 관점, 맥락, 태도, 세계 인식의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사진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본질적인 예술이 될지도 모른다.]
철학의 빈곤의 시대에, 다시 철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다시 우리 인간의 본질로. 그리고 다시 사진의 본질로…
ps/ 스트로비스트 코리아의 새로운(?) 모습.
새롭게 단장한, 이 공간을 통해서 던지시는 화두 또한
그러한 지적 사유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shall we….?”
너무나 반갑습니다 ^^
승급 축하드립니다. 깊이 있게 읽어주시고 이렇게 정성스러운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정말 회화가 사진의 등장 이후 재현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과 자유로 더 깊이 들어갔듯, 이제는 AI 때문에 사진 역시 그런 방향으로 다시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무엇을, 왜, 어떤 태도로 찍는가가 더 중요해지겠지요. 말씀처럼 이 공간에서도 그런 질문과 담론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