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사진의 전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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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사진의 전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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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사진의 전근대성
이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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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픽쳐니 또는 살롱사진이란 말이 있다. 도대체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한번 구명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나라 사단에서는 이 살롱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고 더욱이 일반 작가들이 그들의 창작활동을 하는데 영향을 받아 때로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으로 이러한 폐단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리고 오늘날 국제적인 사진사조선상에서 볼 때 살롱풍의 사진은 이미 전근대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오늘날 현실을 묘사 표현하는 리얼리즘 사진과는 병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으며 더욱이 칼라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이러한 문제는 엄격히 다루어져야 되리라고 믿는다. 즉 색감위주의 칼라사진은 자칫하면 살롱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살롱픽쳐 또는 살롱 사진이니 하는 말에는 정연한 정의나 정설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해석이나 쓰는 방법도 각기 그 입장에 따라서 미묘한 뉘앙스를 갖게 한다. 일본에서도 이 말이 사진 저널리즘에서 제법 눈에 띄게 쓰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라고 하겠다. 그 당시 모잡지가 『살롱픽쳐란 무엇인가?』라는 앙케트를 모아 지상에 발표한 일이 있다. 그 때의 회답에도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모두가 판이한 것이었으며 살롱픽쳐라는 것은 응접실에 장식하는 사진, 예술사진과 동의어, 전시회에 전시해서 인화 그대로 관상하는 사진, 국제적인 살롱에 입선할 사진이라는 등 가지각색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말이 쓰이게 된 이유에서부터 말한다면 그와 같이 이해한다는 것은 적합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는 살롱픽쳐 또는 살롱사진이라는 말은 전후 아마추어 사진계의 대부분이 리얼리즘을 지향하고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환영하게 되고, 그 일반적인 경향은 질적으로 심히 변모해졌을 무렵, 새로운 방향으로 의욕을 불태우는 지도부들이 종래의 보수적인 예술사진에 대해서 제법 비판적인 것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사정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종래의 보수적인 예술사진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아마추어 사진예술의 주류를 이루어온 픽토리얼 포토그래피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요컨대 이와 같은 종류의 작품에 있어서 현실도피적인 화조풍나적 발상방법, 나아가서는 그 형식에 있어서 회화적 구도주의나 의화적인 표현에 의한 고풍적인 정서의 찬미는 더욱이 기록성을 중시하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전후의 새로운 사진계의 풍조에서 본다면 구태여 살롱이라고 비꼬아서 부르기에 알맞은 부정적인 미학이었다는 것이 살롱픽쳐라고 하는 말로 쓰이게 된 어원이라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파와 보수파에서는 이 말에서 받는 어감은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전자는 약간 경멸적인 것으로 쓰고 후자는 오히려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따라서 픽토리얼 포토그래피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지만 그 어원을 말한다면 전전에 쓰이는 예술사진이나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는 보류로 하고 살롱픽쳐란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의 연장이라는 일반적인 해석에 따라서 현대의 사진표현과 상이성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의 역사는 제법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사진발명초기의 곤란한 시대가 지나고 대충 제작과정의 기술적 과제가 해결되어지고 사진이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사진가들이 의욕을 불태우게 된 19세기 말엽부터 점차 감행되어 더욱 20세기 초에는 최고조에 달하고 세계의 사진계의 대세를 지배하던 사진예술 사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그 풍조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정확한 연대를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해방 전 10년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픽토리얼 포토그래피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사진의 기계성이나 화학적인 것은 예술의 전면적인 창의의 박탈이라고 생각하고 회회의 포즈나 구도를 답습하고 심지어는 그 「마티엘」까지도 모방을 하면서 마치 인상파회화가 대기와 빛으로서 형상을 표현하려는 양 보드라운 선의 묘사나 안개가 덮인 것과 같은 「톤」의 효과를 즐겨 쓰며 그와 같은 수법을 적극적으로 사진표현에 도입하는 것으로서 사진의 예술성을 확립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회화주의적인 예술사진에는 카메라의 눈에 비치는 혈실의 기록적인 관찰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물체주의로부터도 멀리되고 『사진의 주의는, 꼭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도 중요한 것은 흑에서 백에 이르는 농담의 밸런스라고 하겠다.』라는 식의 기술주의를 구가하고 더욱 회화적인 구도를 중시하는 형식주의가 감행되어졌다. 즉 형식적인 면에서는 다분히 동양화적인 공간구성으로써 독자적인 양식이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픽토리얼 포토그래피, 즉 회화주의적인 사진의 혈통을 이어받은 작풍은 대전직후는 물론 오늘날에도 계속 아마추어 사진계에 뿌리 깊이 남고 있다. 옛날과 같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그 세력은 대단하다. 말하자면 이것을 살롱픽쳐라고 하고 있으며 그 작품의 특징은 본래의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와 비교해서 거의 본질적으로 변함이 없다.

옛날과 같이 특수한 기법을 사용하고 또는 소프트 포커스의 렌즈를 사용하는 등 더구나 안개가 낀 것처럼 연조묘사나 판화적인 터치의 맛을 흉내 낸 표현을 하는 따위는 오늘날 자취를 감추어 볼 수 없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도 표현형식의 면에서도 명백히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의 연장이다. 그 이미지는 여전히 현실도피적인 분위기주의고 화조풍나적인 심미관에서라고 하겠다. 거기에는 새로운 시대감각이나 금일적 사고 같은 것을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살롱픽쳐의 경우는 분위기 위주의 자연관찰 같은 것이 많고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데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자연의 경치를 대상으로 하기만 하면 모두가 살롱적으로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이다. 가령 자연만을 전문적으로 찍어온 미국의 유명한 사진가 애드워드 웨스턴의 작품에는 살롱적인 것과는 이질적으로 자연에의 엄격한 응시를 볼 수 있으며 거기에서 생기는 강열한 리얼리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요컨대 살롱픽쳐에는 생생한 현실의 인간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자연의 미관 쪽이 그 고풍적인 미의식의 특징 면에서는 쉽게 표현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오늘날 이러한 살롱 픽쳐는 사진예술의 주류가 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하루 빨리 우리 사단에서 사라져야만 될 것이다.


이명동, 『空間』5,4 (‘70. 4), 空間社, pp88-8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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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동 약력

1946 대한예술사진연구회 입회, 총무간사로 피선
1946~49 성균관대 전문부 정치학과 졸업
1950~53 육군 보병 제 7사단에 종군(기록사진 담당)
1953~55 중앙일보사 사진부장
1955 동아일보사 입사
1955~61 서울신문학원 보도사진과 강사(우리나라 최초의 보도사진 강의)
1961 4.19민주 혁명 사진취재로 제 10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63~75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사(보도사진)
1969~83 월간 『신동아』에 14년간 사진평론 연재
1973~95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강사(보도사진)
1988 『보도사진의 이론과 실제』발행(해뜸 출판사)
1989 월간 『사진예술』창간
현재 월간 사진예술 발행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이 게시물은 권학봉님에 의해 2018-04-04 21:05:40 사진조명 동영상 강의에서 복사 됨]

5 Comments
M 운영자 2015.09.30 23:29  
사진에 대해서 좋은 내용의 말씀이네요.
조금은 '그때 그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글쓴이의 바람처럼 이미 살롱사진은 사진에서 사라진 화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 분리주의'이후 완전히 회화적 흉내를 낸 사진의 스타일은 마이너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저는 포토샵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토샵 이전에는 살롱사진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째튼 기술적인 부분이었다면 디지털 편집은 이제 사진의 가능성을 회화적인 상상력 이상의 세계로 혹은 회화적 표현영역을 침범해 갔다고 생각되는데요. 따라서 디지털의 전환은 더이상 회화적 표현의 혹은 마뛰에르의 표현이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을 요하지 않는 시대가 왔으니까 말이죠.
다시말해 사진은 전에 없는 자유로움을 얻었지만 전에 가지고 있었던 진실성과 사실성은 잃어 버린것이죠. 기술의 발달이 의식의 전환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보니,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두서 없이 적어 봤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신 스톰워치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ㅣ
26 stormwatch 2015.10.03 18:02  
항상 세심하게 읽으시면서 좋은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8 산골짜기 2015.10.13 09:43  
제가 사진학을 배운 학력도없고
나이도 이제 4년만 더 살아가면 80살인데요
이명동님의 싸롱사진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아무것도 이해 불가인데도
신익희 장면 선생님들의 오래된 못살겟다 갈아보자 의 구호
열차안에서 심장마비로 아까운 생을 종식한 신익희 선생
이런 기록 사진들이 싸롱 사진이라고 생각하면서
배울수록 학문으로 들어가니 머리가 노후화되여 기억속에 남지않네요
여러가지의 학식을 읽어볼수있어 감사함니다
26 stormwatch 2015.10.23 16:11  
작게나마 도움이 되시다니 다행입니다

관심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7 primingwater 2018.04.05 23:47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