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영의 《Jazz, On Stage》

이다영 | 《Jazz, On Stage》
큐레이션 권학봉
사진: 《Jazz, On Stage》시리즈 중 발췌 12점
사라지는 무대 곁에서 오래 머문 사진가는 음악 그 자체보다, 소리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그 순간 무대 위에 잠시 머물던 빛과 시간을 기록해왔다.
이다영의 사진을 볼 때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어둠이다. 무대는 대부분 검게 가라앉아 있고, 빛은 인물을 전부 설명하지 않는다. 얼굴의 절반, 손끝, 악기의 금속 표면, 몸이 기울어지는 방향만 잠깐 드러난다. 그 짧은 순간에 연주자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 쪽으로 몸을 밀어 넣는 사람처럼 보인다.
《Jazz, On Stage》는 재즈 공연을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이 작업을 공연사진이라는 말 안에만 넣기에는 조금 좁다. 이다영은 재즈를 잠깐 지나가며 찍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16년째 재즈 공연장을 오가며 연주자와 무대, 조명과 암부, 공연이 끝나면 곧 사라지는 시간을 기록해왔다. 이전 작가노트에서도 그는 유럽, 미주, 러시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등 33개국 이상 해외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장기간 기록해왔다고 밝힌다. 이 긴 시간은 그의 사진을 행사 기록이나 홍보 이미지 바깥으로 확장한다.
이다영은 정규 제도 안에서 잘 정리된 작가주의의 길을 걸어온 사진가라기보다, 현장에서 오래 버틴 프리랜서에 가깝다. 여러 촬영 일을 오가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맞추고, 사진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영상 작업까지 병행해온 시간들이 그의 몸에 남아 있다. 현장은 긴 자기 설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먼저 도착해야 하고, 조건을 읽어야 하고,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 장면을 붙잡아야 한다. 이다영의 사진에는 그런 사람의 태도가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은 재즈 뮤지션만의 기록이 아니다. 무대 위 음악인과 무대 밖 사진가가 서로 닮아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재즈 뮤지션은 낭만적인 예술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연장, 리허설, 이동, 섭외, 불안정한 수입, 밤의 노동 속에서 계속 연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다영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서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연주했고, 누군가는 찍었다. 둘 다 자기 이름보다 먼저 무대를 완성해야 했다.
물론 이 작업이 더 멀리 가기 위해 남겨진 질문도 있다. 강한 흑백, 로우앵글, 무대 조명, 몰입한 연주자의 표정은 공연사진에서 익숙한 문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다영의 사진에서 그 문법은 단순한 효과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한두 번의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한 장식이었다면 금방 닳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은 무대를 지나온 사진가에게 이 문법은 현장을 읽는 방식에 가깝다. 어디에 빛이 떨어지는지, 연주자의 몸이 언제 소리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공연장의 어둠이 어떤 순간에 얼굴을 삼키고 어떤 순간에 인물을 밀어 올리는지를 그는 몸으로 익혀왔다.
이다영이 이 장면들을 오래 붙잡은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재즈 공연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화려함은 오래 남지 않는다. 소리는 사라지고, 조명은 꺼지고, 무대는 다음 공연을 위해 다시 비워진다. 사진가가 본 것은 음악의 낭만만이 아니라, 그 낭만이 매번 사라지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재즈 뮤지션의 아카이브인 동시에, 사라지는 현장을 계속 목격해온 사람의 기록이 된다.
이다영은 음악을 통과하는 몸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모두 좋은 사진으로 남았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장르의 무대를 이토록 오래 지켜본 사람에게는, 기술이나 스타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축적이 생긴다. 그의 사진이 익숙한 공연사진의 문법 안에 있으면서도 쉽게 소모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축적 때문이다. 무대의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소리 옆에서, 그는 멋진 장면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계속 남겨왔다.











[작가 노트]
《Jazz, On Stage》
이 작품들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유럽, 미주, 러시아 및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등 해외 30개국 정도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해외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 기록이다. 지금 현시대에는 다양한 음악 장르의 탄생과 시대에 따른 음악 스타일의 흐름 속에서 재즈가 부흥과 침체를 맞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역사 깊은 선대 재즈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아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기록의 역사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공연 촬영 또한 시간이 흘러 재즈 뮤지션들의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 한 장르의 음악가들의 존재에 대한 증명과 기록이 담긴 작품이 되어간다. 공연 사진이라는 장르는 단순히 공연을 찍는 행위뿐만 아니라, 지금 시대의 시대성에 맞춰진 재즈 음악이라는 문화와 현시대 뮤지션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기록이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이 뒤따랐다.
사진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재료인 시간을 통해, 재즈라는 음악 예술이 이 시대에 살아 있음을 영원히 기록하고자 했다. 21세기의 재즈 뮤지션이었던 그들은 재즈를 통해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며 존재했음을,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시간을 마치 영원처럼 기록하고 시간 속에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을 통해서 낯설지 않은 세상과의 틈과 예술가들의 열정을 채집하고, 나는 그 순간순간들을 시각화시켰다. 의도하지 않은 감정과 연주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뮤지션들의 감정,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함께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재즈, 음악은 아티스트의 정체성이자 바로 자신이었고, 그들을 기록한 “Jazz, On Stage : the time of the record”의 사진 작품들은 나를 나타내는 정체성이자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 작품들이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도 지금 현시대에 활동했던 재즈 아티스트들의 모습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2020년 이다영

이다영
이다영은 재즈 공연 현장을 오랜 시간 기록해온 사진가다. 프리랜서 사진가이자 영상 작업자로 여러 촬영 현장을 오가며 활동해왔고, 16년째 재즈 공연장을 기록하며 무대 위 연주자들의 몸짓과 조명, 악기와 공간이 만들어내는 순간을 꾸준히 담아왔다. 그의 사진은 공연의 화려함을 과장하기보다, 음악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사람의 표정과 무대의 시간을 차분하게 붙잡는 데 집중한다.



강렬한 대비의 흑백 공연 사진은 피사체가 무대라는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마치 무한한 우주 속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긍정적인 의미에서 느껴지는 현실과의 괴리와 깊이를 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저도 저런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승급 축하드립니다. 첫 댓글부터 공감 가는 감상 남겨주셨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다영 작가의 흑백 공연 사진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을 오히려 훨씬 넓고 깊은 장소처럼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