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훈의 연화지정

성남훈 | 연화지정
큐레이션 권학봉
사진: 《연화지정》시리즈 중 발췌 12점

성남훈의 연화지정은 사건보다 시간을, 설명보다 사람의 얼굴을 오래 붙드는 사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성남훈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오래 자기 자리를 지켜온 작가다. 그 이름을 수상 경력이나 분쟁지역 취재 이력으로만 정리해버리면 오히려 사진이 잘 안 보인다. 그의 사진을 실제로 붙들고 있으면 먼저 남는 것은 화려한 경력보다 현장에 오래 몸을 두는 사람의 감각이다. 쉽게 지나가지 않고, 더 많이 보고, 오래 머문다. 그 시간이 사진 안에 남아 있다.

티베트 비구니(भिक्षुणी)를 찍은 이 연작도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성남훈이 오래 바라봐온 것은 사건의 격렬한 순간보다, 그 시간을 지나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이번 작업에서도 태도는 같다. 다만 여기서는 사회적 비극이나 충돌의 장면 대신, 수행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이 전면에 놓인다. 희노애락을 앞세우기보다, 불의에 귀의하고 집착을 덜어내기 위해 모인 수많은 비구니들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사진은 그 점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받는 어린 비구니들의 얼굴에는 혹독한 기후와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붉게 튼 뺨, 거칠어진 피부, 또렷한 눈빛. 성남훈은 이 얼굴들을 신비롭게 꾸미지 않는다. 가난이나 순수를 과장하지도 않는다. 가까이 가지만 밀어붙이지 않고, 정면으로 서 있으면서도 위압적이지 않다. 오래 취재한 사진가가 아니라면 만들기 어려운 거리다. 그래서 보는 쪽도 함부로 감상으로 미끄러지지 못한다.

넓은 장면에서는 또 다른 힘이 보인다. 설원 위에 흩어진 붉은 승복, 언덕에 줄지어 앉은 승려들, 법회에 모인 거대한 인파. 화면은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장관을 소비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사람이 많아도 군중으로 뭉개지지 않고, 풍경이 넓어도 엽서처럼 납작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함께 앉고, 걷고, 머무는 시간의 질서가 남아 있다. 성남훈은 군집을 찍을 때도 사람을 잃지 않는다.

이 연작을 지금 다시 보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요즘 이미지는 너무 빨리 판단되고, 너무 쉽게 소비된다. 그런데 성남훈의 사진은 서두르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들 곁에 앉아 그 시간을 함께 견디는 쪽에 더 가깝다. 많이 본 사람의 사진, 오래 머문 사람의 사진, 조용하지만 게으르지 않은 사진이다. 티베트의 비구니들을 찍은 이 작업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앞으로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눈에 띄는 사건이나 강한 장면만이 아니라, 수행과 절제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삶의 시간 또한 깊은 기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화지정》에서

《연화지정》에서 성남훈이 붙든 것은 이국적인 풍경이 아니다.
그 안에서, 조용히 자신을 밀고 가는 인간의 시간을 본다.

성남훈

사진가. 오랫동안 유민과 주변부의 삶, 그리고 동시대의 상처가 남긴 현장을 기록해왔다. 그의 사진은 사건의 겉면을 과장하기보다, 그 시간을 지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몸짓에 더 오래 머문다. 《연화지정》은 티베트 비구니들의 공동체와 수행의 시간을 담은 작업으로, 성남훈이 꾸준히 붙들어온 인간의 존엄과 삶의 밀도를 또 다른 결로 보여준다.
작가 인스타그램 @namhun_sung

4 Comments

  1. 새로운 방식의 사이트 운영 시도 응원합니다~!

    유민의 땅 시절과는 또 다른 방향의 차분한 관조하는 힘이 작업들에서 느껴지네요.
    이 땅 어느곳에선가 벌어지는 누군가의 삶의 속도를 느릿한 걸음으로 따라가는 듯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성남훈 작가의 작업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어 감사하네요.

    유튜브에서의 최신아저씨 (?) 스타일의 매력을 보여주시는 작가님의 깊이있는 큐레이션 또한
    앞으로 쭉 볼 거리라는 생각이 들어 자주 들르게 될 거 같습니다.

    1. 승급 축하드립니다.^^
      성남훈 작가 작업의 느린 호흡을 그렇게 읽어주셔서 반갑네요. 새 방향의 사이트도 너무 부산하지 않게, 오래 볼 만한 글과 작업이 쌓이는 쪽으로 가져가보겠습니다.

  2. 사진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다른분들의 시선도 궁금했었는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사이트 개편 축하드리고 충분히 번성하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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