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윤의 《ERIT LUX》

권장윤의 《ERIT LUX》
큐레이션 권학봉
사진: 《ERIT LUX》시리즈 중 발췌 12점

팬데믹의 도시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었다. 다만 그들은 서로에게 닿지 못했다.

권장윤이 보내온 《ERIT LUX》는 팬데믹 초입의 도시를 거친 흑백으로 붙잡은 작업이다. 사진 속 거리는 선명하게 보이기보다 긁히고 흔들리며, 자주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등장하지만 얼굴보다 실루엣에 가깝고, 도시는 배경이라기보다 몸에 닿는 무거운 공기처럼 남는다.

이 작업을 처음 보면 강한 표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깊은 흑과 거친 입자, 무너진 계조와 흔들린 프레임. 프로보크 이후의 거친 일본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ERIT LUX》가 힘을 얻는 지점은 그 익숙한 표면을 지나고 난 뒤다. 사진은 도발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공격적이지 않다. 사진 안에서 더 오래 남는 것은 도발이 아니라 소외다.

권장윤의 사진은 작가노트의 선언보다 더 조용한 곳에 도착해 있다. 작가는 스스로를 거리의 감각적 도발자로 말하지만, 카메라가 실제로 바라보는 것은 거리를 장악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지하도 안의 마스크 쓴 사람들, 긁힌 유리 너머의 희미한 형체, 어둠 속에서 잘려 나간 간판과 벽, 횡단보도 위의 그림자들. 이 장면들은 당시의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멀리 밀어내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팬데믹은 도시를 완전히 비우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동했고, 지하철을 탔고, 길을 건넜고, 상점의 불빛은 켜져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상이 이전과 같은 무게를 갖지는 않았다. 익숙했던 장면들은 조금씩 낯설어졌고,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격이 생겼다. 권장윤의 사진은 대단한 사건보다, 일상이 자기 온도를 잃어가던 순간들을 붙든다.

《ERIT LUX》의 거친 흑백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강한 콘트라스트와 입자는 너무 쉽게 사진을 ‘있어 보이게’ 만들 수 있고, 거친 표면은 때로 내용의 빈틈을 가리는 장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 그 거칠음은 팬데믹 시기의 도시와 맞물린다. 깨끗하게 정돈된 기록으로는 붙잡기 어려운 불안과 공허가 이 사진들 안에 남아 있다.

실제 사진 속 권장윤은 큰 목소리로 거리를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도시의 한쪽에 조용히 서서, 사람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선 권장윤이 더 좋다. 그의 사진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거친 선언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도 끝내 서로 닿지 못하는 사람들의 거리감이다. 이 작업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작가가 이미 카메라로 도달해 있는 그 조용한 자리를 스스로 신뢰하게 될 때일 것이다.

《ERIT LUX》라는 제목은 “빛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사진들에서 빛은 승리의 상징처럼 오지 않는다. 빛은 자주 희미하고, 끊기고,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작업의 빛은 희망이라기보다 버티는 감각에 가깝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그러나 쉽게 도착하지 않는 것.

《ERIT LUX》는 팬데믹의 시간을 거창한 역사로 만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말수가 줄어든 도시, 서로를 조심스럽게 피하던 사람들,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변해가던 시간을 남겨둔다. 도시가 잠시 말을 잃었던 그 시간, 권장윤은 카메라를 들고 그 안에 서 있었다.

빛은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아주 조금 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업은 그 사이의 시간을 찍은 사진이다.

[작가 노트]

《ERIT LUX》

Prologue

철학 따위는 없다. 거리에서의 감각적 도발을 자행하는 것이 전부다. 뚜렷하고 그럴듯한 주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즉흥적인 반응에 셔터를 누를 뿐이다. 숨소리와 심장 소리는 한 컷, 한 컷에 리듬을 탄다. 내 사진은 예술이 아닌 기록, 사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현시대의 모습을 내 해석 그대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사진을 찍은 이유에 가장 근접한 답일 것이다.

첫 번째 개인전 이후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오만방자했던 태도와 마음가짐, 거짓된 행동으로 점철된 시절. 달콤한 유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병을 유발했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투가 나를 일으켰다. 그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는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카메라를 신체의 일부 삼아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음지의 사진가로 살기 시작한 이유다. 치유의 고통도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이 작업이 그 첫 번째 증거다.

숨 쉬듯 찍고 밥 먹듯 사진을 되돌아본다. 나의 하루 동선은 내게 미스터리이자 빛이다. 코로나, COVID-19, 팬데믹이라는, 이전엔 알지 못했던 단어들이 일상에 파고든 시대의 불길한 징후를 사진으로 끄집어냈다. 내 사진에는 정답 대신 첨예한 질문이 있다. 사진을 통해 여러분이 답을 찾든, 아니면 질문 그대로 남겨두든, 내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 그들에게 내가 그린 물음표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것이 나의 삶이자 업보이다.

사진이라는 언어로 내 머리와 마음, 내면의 수수께끼를 밖으로 꺼낸다. 구석구석 종이 위에 남겨진 많은 단서가 어느덧 2020년 한 해를 엮는 퍼즐 조각이 되었다. 종이에 인쇄되거나 어떤 매체든 타인의 손을 관통하는 순간부터 이 작업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다. 사진에 대한 반향은 오롯이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둔다.

현재를 음미하라.

2021. 3. 21. / 재의귀인

권장윤

권장윤은 도시의 장면을 거친 흑백의 감각으로 오래 기록해온 사진가다. 그는 화려한 사건보다 거리 위에 남는 빛과 그림자, 사람들 사이의 간격, 쉽게 설명되지 않는 공기를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의 사진은 강한 콘트라스트와 흔들린 프레임으로 먼저 다가오지만, 그 안에 오래 남는 것은 도발보다 소외와 침묵에 가깝다. 오랜 시간 같은 방식으로 거리를 바라봐온 그의 작업은 스타일의 반복을 넘어, 도시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묵묵히 확인해온 기록처럼 읽힌다.
개인작업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