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4의 밤, 오래 버틴 사람들의 얼굴

이대환 | F4
큐레이션 권학봉
사진: 《F4》 시리즈 중 발췌 12점

안산 원곡동의 밤을 오래 바라본 이대환의 사진은, 이주노동자를 낯선 타자가 아니라 이미 이 사회를 버텨낸 사람들의 얼굴로 다시 보게 만든다.

이대환의 사진은 이주노동자를 멀리서 구경하지 않는다. 안산 원곡동의 밤, 벽을 가득 메운 구인 전단, 물웅덩이에 뒤집혀 박힌 네온, 하루의 피로를 잠시 밀어내기 위해 공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의 사진은 한국 사회가 흔히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외국인’이라는 범주 안에도 서로 다른 시간과 처지가 겹쳐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특히 조선족 노동자들의 삶을 따라가는 그의 시선에는 바깥의 호기심보다 그 동네의 리듬을 오래 알고 있는 사람의 감각이 먼저 배어 있다.

작가노트의 제목이기도 한 F4는 단순한 비자 코드가 아니다. C3, H2, F4, F5 같은 표기는 원곡동에서는 곧 시간의 길이이자 버텨낸 연수이고, 불안과 안정의 차이를 가르는 또 하나의 위계처럼 작동한다. 이대환은 바로 그 위계가 남긴 표정들을 본다. 경찰 단속의 공포 속에서 잠드는 노동자도 있고, 오랜 시간을 버텨 비교적 안정된 자리에 오른 뒤 밤마다 공원 사교댄스로 하루를 털어내는 사람도 있다. 그의 사진은 이 차이를 설명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몸짓과 표정, 밤의 공기와 생활의 흔적으로 조용히 드러낸다.

이 작업이 좋은 이유는 연민을 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를 다룬 사진은 쉽게 고발의 제스처나 비참함의 과잉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이대환의 사진은 대상을 불쌍한 사람이나 사회문제의 증거로 먼저 정리하지 않는다. 그가 붙잡는 것은 오래 버틴 사람들의 표정이고,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리듬을 만들어낸 몸들이다. 그래서 인물들은 통계나 사례가 아니라, 이미 자기 몫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으로 화면 안에 남는다.

형식적으로도 그의 사진은 과장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능숙한 작가이지만, 그 능숙함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한 걸음 눌러놓는 쪽을 택한다. 프레임은 안정적이고, 인물과의 거리도 가깝지만 조급하지 않다. 사진은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대상을 오래 보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잘 찍는 사람이 일부러 덜 말하는 쪽을 택했을 때 생기는 힘, 이 담백한 절제가 이대환 사진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동시에 이 작가의 사진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이 처한 현실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꾸준히 따라간다는 것은 몇 장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시간과 관계, 신뢰를 오래 들여야 하고, 그만큼 작가 개인의 생활은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지금 많은 다큐 사진가들이 그렇듯, 이대환 역시 작업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현실과 나란히 서 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한 개인의 성실함을 넘어,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이대환의 작업이 남기는 인상은 화려한 완성이라기보다 묵직한 신뢰에 가깝다. 그는 대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 곁에 오래 남으려는 사람에 더 가깝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에 이런 태도는 오히려 더 드물다. 이대환의 사진은 큰 소리로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원곡동의 밤을 살아낸 얼굴들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떤 노동과 어떤 기다림 위에 서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쉽게 지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 노트]

F4

C3, H2, F4, F5는 비자의 종류들로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만 보이는 계급 아닌 계급이다.

보통 단기방문을 위한 C3비자로 시작하여 3년을 일하면서 거주할 수 있는 H2비자, 오랜 기간을 걸쳐서 재외동포를 위한 F4비자를 받게 되면 영주권 즉, F5비자의 안정권에 도달한다. 물론 이 정도에 오르면 고향에는 집 한두채와 가게 하나쯤은 차려 있을 것이며, 개인으로써는 거의 모든 경험과 위기을 다 넘겼을 것이다.

안산의 원곡동은 현재 외국인 비율이 인구의 44퍼센트 정도로, 조선족은 그중에도 64퍼센트정도를 차지한다. 이중 F4비자와 영주권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2-30년 이상 거주한 조선족들이다. 꾸준히 이곳에서 버텨온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한국에 남아있기를 선호하며, 60세가 넘어도 계속해서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이쯤 되면 한국 사장들로부터 돈을 떼일 걱정도 없으며, 이미 대체할수 없는 자리의 사람들이다.

장기 거주한 조선족들의 일부는 매일 밤마다 주변 공원에서 열리는 사교댄스에서 볼수있다. 본토에서 유입되는 한족이 늘면서, 점점 밀려나는 조선족의 젊은 세대는 앞으로 2-30년 내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안정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F4 비자가 있고, 그것만 소유한다면 영주권은 시간문제이다. 그나마 이를 소지한 나이 든 조선족들은 매일밤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공원의 야외 사교무도장을 향하며, 기간이 제한적인 H2비자 혹은 E9비자 소유자들은 다음날의 고된 노동을 위해 술에 젖어서 잠든다. 그러다가 가끔 일어나는 경찰의 불시검문에 불법외국노동자들은 가슴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이대환

이대환은 한국 사회 안의 이주노동자와 주변화된 삶의 풍경을 꾸준히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안산 원곡동을 비롯한 현장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외부의 호기심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인물과 공동체의 표정을 담아왔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태도와 탄탄한 기술을 바탕으로, 과장 없이 담백한 화면 안에 동시대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층위를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 인스타그램 @ianmagicthegathe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