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2

2007.09.11

사진 매력에 예술이 홀딱 반했다

회화, 조각 등과 함께 현대미술로 동격 대우 … 극명한 사실성과 판타지 동시에 표현

  • 권순평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

    입력2007-09-05 14: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진 매력에 예술이 홀딱 반했다

    일본 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 아라키 노부요시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자신의 성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음식·꽃·거리 등에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빗대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사진매체의 등장을 가장 먼저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들어 사진 또는 사진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작품 전시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하는 문예연감 ‘문화예술’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국내에서 열린 전시 가운데 사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며, 기타 사진을 끌어들이는 전시를 포함하면 전체의 반수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세계 유수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에서 사진과 영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3분의 2를 넘어섰으며, 이에 걸맞게 사진의 판매량과 작품도 완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매년 뉴욕에서 미술시장의 비수기인 2월 나흘 동안 열렸던 AIPAD(The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Photography Art Dealers·국제사진딜러협회) SHOW가 2001년부터 성수기인 5월로 옮기고 기간도 닷새로 늘린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PAD의 2006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진작품의 가격 상승률이 매년 15%를 웃돌아 타 매체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국내외의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사진을 찍고 향유하는 계층이 넓어졌으며, 이는 곧 사진시장의 팽창을 의미한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조차 사진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다’ ‘시대정서와 사진이 적확히 부합한다’ ‘이제 사진작품도 철저한 에디션 관리와 작가 프로모션을 통해 회화, 조각 등 다른 예술매체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게 됐다’ ‘사진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각종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다른 예술품보다 저평가된 까닭에 가격경쟁력이 있으며, 작품의 생산·유통·관리가 용이해 컬렉터들의 구매가 증가하고 있다’는 등 수많은 분석과 관점이 나오고 있으며, 이는 모두 가능한 해석이다. 바꿔 말하면 현대사회의 다원성만큼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음을 뜻하는 것일 게다.

    미술 전공한 사람들 거리낌 없이 사용

    사진 매력에 예술이 홀딱 반했다

    영국 작가 질리언 웨어링의 작품 ‘Self portrait’ 시리즈 중 일부. 작가는 ‘YBA’(Young British Artists·영국 젊은 미술가 그룹)의 인물 중 하나로, 자아의 실체와 사회적 인상이 부대끼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이렇게 비대해진, 그래서 그만큼 관심을 모으는 현대사진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물론 이를 규정지을 만한 절대기준이란 없고, 여기서는 필자의 사적 판단에 기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현대사진은 미술의 범주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분리주의적 발상’을 인정한다 해도 이미 사진이 현대미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입증하듯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이 거리낌 없이 사진을 매체로 사용하며, 보수적인 미술관에서조차 사진은 중요한 전시 테마이자 소장 대상이다.

    현대사진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경향은 작가들이 사진적 속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손을 거쳐야만 하는 타 매체의 한계를 넘는 사진의 재현 능력은 보는 이에게 전통적 매체를 통해 느끼기 힘든 극명한 사실성과 여과 없이 드러나는 사진적 판타지를 동시에 제시한다. 사진작품이 대형화되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사실적인 인상을 추구하려는 작가들의 행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밖에 현대사진의 특징으로 사진과 타 매체의 혼용, 사진의 적극적인 변용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작가들이 사진을 자신의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진은 새로운 표현재료가 됐고, 디지털 사진 장비의 발전과 보급으로 사진과 사진적 이미지를 자유로이 만질 수 있게 되면서 사진은 이제 작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매체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대사진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현대사진은 ‘연출사진, 사적 다큐멘터리, 무미적(無味的) 풍경, 미술 + 사진’식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단, 여기서는 현대미술로서 두드러진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사진에 국한됐음을 밝혀둔다.

    사진 매력에 예술이 홀딱 반했다

    무미적 풍경 사진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작품 ‘파리, 몽파르나스’. 작가는 ‘뒤셀도르프 학파’의 인물 중 하나로, 대중의 삶과 현대 소비사회의 공간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극명한 리얼리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1. 연출사진

    연출사진은 ‘Making Photography’ ‘Constructing Photography’ ‘Tableau Photography’ 등으로 불린다.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부터 급속히 확산됐다. 대부분 연출사진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와 달리 작가의 의도로 사진적 상황이 부여되고 그에 따라 내러티브가 생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 사적 다큐멘터리

    사적 다큐멘터리는 ‘Intimate Life’ ‘Personal Documentary’ 등으로 불리며, 전통적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공적인 성격을 배제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유형을 기록하거나 사회의 ‘마이너리티’를 폭로하는 입장을 취한다.

    3. 무미적 풍경

    ‘Deadpan’이라고도 불리는 무미적 풍경사진은 문자 그대로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즉 작가의 주관적 판단과 사적 인상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화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사진이다.

    4. 미술 + 사진

    사진 매력에 예술이 홀딱 반했다

    연출사진의 예인 작가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작품 ‘Twilight’ 시리즈 중 일부. 이 작품은 영화 제작 때나 볼 수 있는 대규모 세트를 구성하고, 전문 연기자가 참여하며, 작가는 감독 처지에서 특정 서사를 연출한다.

    미술의 성격과 사진의 성격이 혼재한 작품을 이른다. 이 부류의 작품에서 사진은 더는 전통적 방식의 수법을 고수하지 않고, 유연하게 매체를 다룬다. 기획화된 전략을 가지며 우리의 일반 정서와 사회적 인식에 관한 해체적 담론을 환기하는 유의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 계열의 작가는 크게 전통미술을 배경으로 하는 작가와 사진을 배경으로 하는 작가로 나뉘며, 대부분 전자의 경우 사진을 오브제 혹은 미술 표현의 한 재료로 이용한다면 후자는 사진 문법을 유지하는 가운데 사진적 이미지를 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 기법을 차용한다.

    예전과는 달리 미술계가 사진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지금, 사진작가들 역시 자신의 이미지를 ‘예술(Fine Art)’로 여기는 것을 바람으로 갖게 됐다. 이 글이 현대사진에 대한 여러 논의를 통해 사진 영역에 존재하는 많은 예술적 동기와 다양한 표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미학 교실은 주간동아, (사)문화문, 사진아트센터 boda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됩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