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자코우스키의 사진가의 눈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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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자코우스키의 사진가의 눈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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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s Eye by John Szarkowski

 

사진가의 눈, 사진가의 힘(II) 

 

이번호에는 지난호에 이어 자코우스키가 분류한 사진 고유의 특성 즉 사물 그 자체, 디테일, 프레임, 시간, 관점 등 다섯가지 가운데 나머지 세가지에 대한 글과 사진이 계속 이어진다. 자코우스키는 사진의 이해를 위해 먼저 한 세기동안 이루어진 사진예술의 발전을 고찰하며 두 가지 점에 주목한다. 먼저 사진은 전문적으로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찍어온 무수한 사진들에 의해 그 자체의 미학을 발전시켰다는 점과 그림과 달리 사진의 대상은 중요한 것부터 하찮은 것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예술매체와는 차별되는 이런 독특한 역사를 가진 사진이 가진 고유의 특성은 무엇일까? 자코우스키는 사진 발명 초창기부터 1960년대까지 제작된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그 고유의 특성을 다섯가지로 분류한다. 지난호에 소개된 두가지 특징에 이어 이번호에는 남은 세가지 특징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단순히 사진이 대상의 재현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복제일 뿐이다. 사진은 발명 이래 한번도 1+1=2라는 산술학에 복종한 적이 없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사진에 찍히는 순간 더이상 괘종시계가 아닌 것이다.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어떤 의미를 창출한다. 그 의미가 환기하는 공감의 벽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진의 힘은 극대화된다. 사진이 예술로 등극하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1962년, 에드워드 스타이켄으로부터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를 물려 받은 존 자코우스키는 바로 이 점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세상에 태어나 화가들의 작업 도구가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낸 이 신기술에 대해 자코우스키는 사진만이 가진 고유한 존재 이유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2년 후, 그 결과물을 ‘사진가의 눈’이란 제목의 전시회로 보여줬다. 다른 예술매체가 갖지 못한 사진만의 고유한 문법을 체계적으로 밝힌 이 전시회는 이제까지 우리가 사진을 바라보던 시선을 바꿔놓았다.

 

사진의 세번째 특성 - 프레임Frame

 

사진의 프레임은 사각이다. 왜 사각일까? 그것은 어쩌면 콜럼버스가 지구는 둥글다는 신념으로 인도를 찾아 떠나기 이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사각형이라는 믿음과 연관이 있을까?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지구는 둥글다기보단 사각이란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마치 직선으로 보이는 수평선이나 지평선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배를 타고 항해하거나 끝없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게 되고 다른 면의 세상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거기서 이전의 기억들은 잊고 행복한 인생을 시작해볼 수도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다는 맥락에서 보면 카메라의 프레임이 사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방이 사각인 것처럼 말이다. 파라다이스는 사각형일 것이다. 감옥이 사각형이므로.
아무튼 우리는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긴 세상을 찍는다. 물론 사진가는 보이는 것을 전부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없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프레임 안에 담기는 것은 늘 사진가가 세상 안에서 추출해낸 어떤 장면이다. 그것은 사진가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진가의 비전이다. 아예 처음부터 프레임 밖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가 찍은 사진을 보고 프레임 밖에 무엇이 존재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곧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상들 속에서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느냐는 사진가의 선택이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카메라의 역할보다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존 자코우스키는 “사진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을 구분하는 프레임은 그 안에 있는 것에 관중들을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결정하는 행위야말로 사진의 중심 행위”라며 프레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마치 한정된 철자를 가지고 수십 가지의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조합해낼 수 있는 놀이처럼 사진가가 세상 속에서 취사선택한 모습들은 바로 사진의 프레임을 통해 사진가의 비전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에드워드 웨스턴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 역시 프레임이 사진 창작의 본질적 행위임을 천명한 것이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검을 천을 둘러쓰고 프레임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 자체로 스릴이다. 카메라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그라운드 글라스 위에 맺히는 이미지의 변화를 보는 것은 계시와도 같은 순간이다. 사진가는 탐험가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이미지를 발견한다.” -에드워드 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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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KINEIN, WILLIAM. American(1871-1945)

 

자, 그럼 자코우스키가 사진의 특성 세 번째로 제시한 프레임에 속하는 사진들을 살펴보자. 키네인 윌리엄(Kinein, William)이 찍은 정치 집회 사진을 보자. 초대 손님들이 연설자와 단상에 함께 앉아 있고 기자들은 단상 밑에 앉아 있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연설자, 지루한 듯 딴 곳을 응시하는 단상 위의 귀부인, 아무런 감흥 없이 연설내용을 받아 적고 있는 기자들이 모두 한 프레임 안에 시니컬하게 공존하고 있다. 만약 사진가가 프레임 안에 미국 국기와 연설자의 모습만을 넣었다면 이 사진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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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FRANK: US 90, Texas, 1955, from the Americans

 

위 사진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가 구겐하임 기금으로 산 중고 폭스바겐을 타고 3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는 황량한 시골 길 위에 세워진 폭스바겐의 반쪽만 찍혀 있다. 차안에 타고 있는 그의 아내 메리의 지친 표정과 파블로의 잠든 모습을 뒤로 하고 카메라를 향해 아련한 빛을 뿜어내는 외눈박이 헤드라이트가 고달픈 인생의 여정을 비추는 쓸쓸한 등불 같다. 만약 로버트 프랭크가 폭스바겐을 전부 프레임 안에 넣어 헤드라이트를 둘다 보여줬더라면 이런 감흥은 분명 덜했을 것이다.

 

사진의 네번째 특성-시간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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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DWEARD MUTBRIDGE: Gull Flying, 1883-87

 

사진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방법을 제시하는 사진으로 에드워드 머이브릿지(Eadweard Mutbridge)의 사진들보다 더 적절한 예는 찾기 힘들 것이다. 에드워드 머이브릿지는 달리는 말을 연속 촬영하여 그동안 분분한 논란거리가 되어왔던 말이 도약하던 순간에 네다리가 다 올라가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다. 종래의 화가들이 그렸던 네 다리가 다 접힌 채 도약하는 말의 이미지는 우리 눈의 시각적 한계를 드러낸 오류임을 그는 사진으로 증명했다. 이처럼 사진은 육안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시간을 드러내어 순간적인 모양의 변화들을 발견하게 했다. 사진에서 보듯, 사진으로 찍혀지기 전까진 아무도 날아가는 새의 날개짓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새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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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CARTIER-BRESSON: Children Playing in Ruins, Seville, Spain, 1933

 

대상의 흔들림이나 육안으로 잡아낼 수 없는 순간을 정지시켜 시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예들은 앙리 까르띠에-브레송(HenriI Cartier-Bresson)의 사진에서 시간이 사진의 절대적인 특징임을 드러내며 절정의 미학을 구축하게 된다. 브레송은 시간을 잡아내는 것이 바로 사진을 만들어낸다는 사진의 시간성을 직관으로 파악한 사진가다. 예전에는 화려했을 그러나 지금은 허물어져버린 성벽 그리고 그 폐허 속을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라. 시간의 흐름으로 여전히 진행 중인 소멸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몸짓은 그 자체로 사라짐과 생성을 반복하는 우리 삶의 불가사의한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브레송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어떤 패턴을 감지해서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그 패턴은 다름 아닌 드러난 외양과 숨은 의미가 하나가 되는 계시의 순간이며, 물리적 공간과 보는 이의 내면 공간 역시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시간이 형태와 내용을 결정하는 이 순간을 그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불렀으며 바야흐로 이는 사진을 찍는 모든 이들의 뇌리에 제일 강령으로 자리 잡았다.자코우스키는 사진의 특징인 시간에 관해 첫 번째 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진은 시간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사진은 오로지 현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 발명 초창기에는 노출 시간이 길었다. 만약 대상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연속된 이미지들이 공간과 시간을 겹겹이 드러내며 표현되었다. 아마도 움직임의 과정을 연구한 사진의 시도는 우연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에, 시간 속에서 연속된 움직임을 표현한 실제 제작이 이뤄졌다. 사진가들은 지치지 않고 시간의 파편들을 고립시키는 주제를 찾아내었다. 성큼 건너뛰고 있는 말, 분노에 찬 인간의 얼굴, 손과 몸의 동작, 공을 치는 방망이, 우유 통에 떨어지는 우유방울. 까르띠에 브레송이 결정적 순간이라고 부른 시간의 발견은 더욱 미묘한 발견이다. 외부적인 사건 때문에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안에 어떤 이미지가 사진으로 찍히는 순간의 조화, 명확함 그리고 순서들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형태와 패턴 속에 감지되기 때문이다.”-존 자코우스키

 

사진의 다섯번째 특성 - 관점View Point

 

사진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억할 만하다. 어떤 사진들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준다. 어떤 사진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다섯번째 특성인 ‘관점’이다. 사진이 보여주는 새로운 관점들을 통해 우린 특별한 지성 없이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빙 펜은 사진의 이러한 측면을 멋들어지게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진을 통해 경험한 이 새로운 관점들은 이제 사진기 없이도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연을 예술이 모방한 적이 있었듯이 이젠 자연이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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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IN LANGDON COBURN: The Octopus, New York, 1912

 

알번 랭던 코번(Alvin Langdon Coburn)이 찍은 뉴욕의 한 공원 사진이다. 눈으로 덮인 겨울공원에는 겨울의 싸늘한 태양 아래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는 이 건물 몇 층에선가 공원을 내려다보았을 것이고 공원에 조형된 길의 모습이 문어발 같다는 생각을 하며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지상에선 조망할 수 없는 이 모습, 평범한 공원이 문어발처럼 뻗어나가고 고층건물의 그림자가 기묘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는 이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는 바로 그 장소, 그 시각에 카메라를 든 사진가가 없었다면 우리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이다.

 

“사진가가 그의 대상을 움직일 수 없다면, 카메라를 움직일 수 있다. 명확하게 대상을 보기 위해 평범한 관점을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위에서 찍거나, 밑에서 찍거나 혹은 아주 가까이서 찍거나 아주 멀리서 찍거나, 등 뒤에서 찍거나 대상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순서를 뒤집어엎거나 반쯤 가려진 대상을 찍거나 등등. 사진가는 마음속으로 짐작했던 것보다 복잡하고 훨씬 풍부한 세상의 모습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사진들이 대상의 명확성뿐만 아니라 모호함까지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신비롭고 또한 시시각각 사라져가는 이미지들이 그 자체의 형태 속에서 질서를 지니고 있으며 의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진가들은 화가 터너가 했듯이 환상의 도시를 산 주변에 그려 넣을 수는 없다. 웅장한 건물위에 탑을 더 첨가할 수도 없다. 혹은 산의 정상을 깎아내리는 일도 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그가 본 그대로를 찍어야 한다. 사진가에게 유일한 자유란 관점을 선택하는 일 뿐이다.”                                                                        존 자코우스키

 

글쓴이 박태희는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와 건국대에서 사진 강의를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눈빛)가 있다.

 

월간사진 2006년 1월호에 게재


 

 

[이 게시물은 권학봉님에 의해 2018-04-04 21:07:16 사진조명 동영상 강의에서 복사 됨]

1 Comments
22 비목어 2015.08.25 12:52  
사진가의 눈 1/2 정독,,,
사물그자체, 디테일,프레임,시간 ,관점,,,,5가지요소
머릿속에 정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