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자코우스키의 사진가의 눈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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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자코우스키의 사진가의 눈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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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s Eye by John Szarkowski


사진가의 눈, 사진가의 힘(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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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드와노, 노트르담 성당 앞의 남자, 1956


단순히 사진이 대상의 재현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복제일 뿐이다. 사진은 발명 이래 한번도 1+1=2라는 산술학에 복종한 적이 없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사진에 찍히는 순간 더 이상 괘종시계가 아닌 것이다.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어떤 의미를 창출한다. 그 의미가 환기하는 공감의 벽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진의 힘은 극대화된다. 사진이 예술로 등극하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1962년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으로부터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직을 인수한 존 자코우스키(John Szarkowski)는 바로 이 점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세상에 태어나 화가들의 작업 도구가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낸 이 신기술에 대해 자코우스키는 사진만이 가진 고유한 존재 이유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2년 후, 그 결과물을 ‘사진가의 눈’이란 제목의 전시회로 보여줬다. 다른 예술매체가 갖지 못한 사진만의 고유한 문법을 체계적으로 밝힌 이 전시회는 이제까지 우리가 사진을 바라보던 시선을 바꿔놓았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삼각대에 놓인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찍은 사진. ‘사진가의 눈’이란 타이틀과 함께 나란히 펼쳐진 이 사진을 통해 자코우스키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1837년, 사진의 탄생이 공포된 이후 가장 많이 찍혀진 사진이 바로 기념사진이다. 카메라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대중화된 1960년대 이후, 카메라는 우리 삶의 동반자였다. 아들, 딸의 졸업식, 결혼식, 여행, 사건과 사고, 행복한 순간 등 조금이라도 삶의 증거로 남겨야 할 가치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카메라가 있었다. 이처럼 사진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기념사진이라는 것, 즉 기억할 만한 순간을 남기는 일이란 사실을 자코우스키는 이 사진을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능은 사진 발명 이전에 그림이 어느 정도 담당하지 않았는가? 잠시 기다려라. 뒤에 몇 마디 말이 더 붙는다. 기억할 만한 순간을 남기는 것. 중요하거나 사소하거나, 보기 좋거나 싫거나. 그렇다. 그림과 사진은 이렇게 다르다. 그림은 왕이나 귀족, 신화 속의 신들처럼 중요한 사람을 그리고 중요한 사건을 기념했다. 그런데 사진은 그와 동등하게 익명의 사람을 그리고 하찮은 것들을 기념했다. 사진은 참으로 민주적인 매체다.
그렇다면 ‘민주적’으로 대중화된 사진을 예술적으로 발전시킨 주체는 누구인가? 사진 발명이전에 이미 카메라 옵스큐라를 작업의 도구로 활용할 줄 알았던 화가들인가? 아니면 필름 유제와 인화에 쓸 약품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던 과학자들인가? 아니다. 자코우스키는 서문에서 한 세기가 넘게 사진을 발전시켜온 주체는 예술가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닌 바로 넘쳐 흐르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일반인들이라고 못 박으며 이들의 직업을 나열한다. “은세공인, 사색가, 약제사, 대장장이, 인쇄공” 그리고 덧붙인다. “만약 사진이 새로운 예술로 인정받으며 출발했다면 예술 교육을 따로 받지 않은 이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리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사진의 발전은 이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쏟아낸 수많은 이미지들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우연의 산물이건, 예술적 의도건 우리가 전통적으로 고수해왔던 보는 방식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재밌지 않은가? 저 위대한 프랑스의 시인 샤를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모든 예술의 적이라고까지 비난했던 사진이 그런 천대 속에서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당당히 예술로 인정받는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사의 변증법을 증명하는 것이다.


왜 사진인가? 사진이 다른 점
결국 자코우스키가 정리한 사진 발전 역사에 따르면 한 세기동안 발전해온 사진은 한마디로 찍는 사람의 다양성과 대상의 다양성이라는 글자 외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특성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이미지들 가운데 우리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화인을 남기는 것들이 성공적인 사진으로 인정받았고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뒷꼭지를 울리는 공간이란 어떤 강령이나 이념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담긴 장소이듯 사진의 역사도 어떤 사조나 이론과 상관없이 그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의 집합이라니 참으로 사진은 응축된 삶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린 한 가지 질문에 당면하게 된다. 사진을 진지하게 창작의 도구로 삼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졌을 의문이다. 마치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온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처럼, 한번 생긴 이 의문은 명확한 해답을 내리기 전까진 죽을 때까지 우뇌의 한 모퉁이에 달라붙어 있을 집요한 놈이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이 질문을 풀어쓰면 이렇게 된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소설을 쓰지 않고 사진을 찍는가? 다시 말해 사진이 다른 예술매체와 다른 점은 대체 무엇일까?
뉴욕현대미술관의 사진부 큐레이터를 30년간이나 하면서 뉴욕을 현대사진의 메카로 만들었던 장본인 존 자코우스키가 큐레이터로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은 수많은 사진과 1840년대부터 제작된 사진들을 펼쳐놓고 그는 다른 예술 매체와 대별되는 사진만의 고유한 특성을 하나하나 분류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2년 후인 1962년 ‘사진가의 눈’이란 상징적인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고 다시 2년 후에 책으로 펴낸다. 그가 이 책의 서문에 쓴 글은 현재 대부분의 미국 대학의 사진역사나 비평 수업시간에 가장 먼저 읽혀지고 있는 텍스트이다. 그만큼 그의 글은 사진에 대한 이해와 존재 규명에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코우스키는 우선 사진의 발명이 ‘기본적으로 새로운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제공했으며 이 방법은 합성이 아니라 선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첫머리에 밝히고 있다. 즉 ‘회화는 전통적이 기교와 화가의 행위가 결합된 작업이지만 사진은 마치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이 찍혀지듯이 선택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 발명 초창기엔 전통적인 예술 형태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 사진은 창의성이 결여된 현실 복제 수단으로만 비쳤던 것이다. 사실 사진은 다른 어떤 매체와 비교할 수 없이 사실적으로 대상을 재현할 수 있는 기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사진이 대상의 재현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복제일 뿐이다. 사진은 발명 이래 한번도 1+1=2라는 산술학에 복종한 적이 없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사진에 찍히는 순간 더 이상 괘종시계가 아니다.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어떤 의미를 창출한다. 그 의미가 환기하는 공감의 벽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진의 힘은 극대화된다. 사진이 예술로 등극하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자코우스키는 우선 다른 장르와 대별되는 사진의 독특한 특성을 5개로 나눈다. 그리고 각각의 카테고리에 맞는 사진을 제시하며 그 특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물론 여기에 제시된 모든 사진은 모두 이 5개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편의상 나누었음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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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특성 - 사물 그 자체 The Thing Itself
첫 번째로 제시한 사진은 작가 미상의 집안 내부를 담은 이미지다. 사진 발전의 주체가 예술가가 아니라 수많은 익명의 일반인들이란 그의 설명에 부합하는 절묘한 배치다. 방안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에선 마치 뒤죽박죽 섞인 홀수의 배열을 볼 때와도 같은 이상한 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다. 새로 무늬의 벽지, 화장대 거울 앞에 놓인 초와 거울에 비친 반영의 기묘한 이질성. 벽에 붙은 사진들의 규칙적이며 동시에 어긋난 배치와 역시 화장대 거울 속에 비친 맞은편에 걸린 그림과의 묘한 거리감. 세면대 위에 비슷한 모양으로 걸린 두장의 하얀 수건. 방문에 붙어있는 시력 검사판 등. 언뜻 평범해 보이던 방안 풍경 속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어긋남들을 발견할 때마다 삶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감춰진 비밀들을 찾아내는 숨은 그림 찾기 같다. 집중해서 보면 반드시 눈에 띄게 될 이 비밀스러운 신비들은 사진이 아니고선 결코 찾아질 수 없다. 에드워드 웨스턴의 피망사진처럼, 평범한 대상에서 우러나오는 신비로움이다.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찍은 듯하지만, 실은 삶의 신비로운 모습을 늘 찾아 헤메는 한 사진가의 집요한 응시가 없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풍경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을 자코우스키는 사물 그 자체를 설명하는 첫 단락에 밝히고 있다.
“사진가가 배운 첫 번째 지침은 사진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를 담는다는 사실이다. 사진가는 이러한 점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진이 사진가를 배반할 것이다. 사진가는 누구와도 비교할 데 없는 창의력으로 넘치는 예술가란 사실을 배웠다. 그러한 순간을 명확히 알고 영원히 고정시키기 위해선 예민하고 유연한 지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어서 그는 사물 그 자체를 담는 사진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1909년 윌슨 사진잡지에 쓴 글의 한 부분을 멋들어지게 인용하고 있다.
“사진에는 절대적인 진실이 들어있다. 평범한 화가가 예쁜 모델을 그린 다음, 줄리엣이란 제목을 붙이고 그림 밑에 셰익스피어의 줄리엣과 로미오에 나오는 대사 한 구절을 써 놓으면 이 그림은 아무런 이의 없이 아름다운 줄리엣을 그린 그림으로 칭송을 듣게 된다.
사진가가 비슷하게 생긴 모델을 찾아서 그녀에게 그림 속 주인공처럼 예쁜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은 다음 줄리엣이란 제목을 붙인다면 어떨까? 그 모델은 줄리엣이 아니라 그저 모델 윌킨슨 양으로 불릴 뿐이다. 그녀가 줄리엣이 되기엔 사진은 너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자, 그럼 ‘사물 그 자체’를 설명하는 다른 사진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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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멜빵바지를 입은 금발머리의 이 남자는 전형적인 미국의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그의 머리 뒤엔 미국 농업 안정국의 팻말이 붙어 있다. 곧 사진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1940년에 아서 로스타인(Arthur Rothstein)이 찍은 이 사진은 농업 안정국의 정책으로 대공항의 여파에서 벗어나 안정의 기로에 접어든 미국인의 개선된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서 로스타인은 농업 안정국에서 고용한 사진가였고 그래서 그 정책을 선전하는 이 사진은 사람들이 가진 사진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이 사진은 자코우스키가 ‘사물 그 자체’의 특성을 설명한 글 가운데 다음의 진술에 부합하는 이미지다.
“문제는 대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사진 안에서 어떻게 사진가의 비전을 표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찍은 것 같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가 전달될 때, 그 힘과 공격성은 다른 어떤 예술 매체보다 강력하다.”
마지막으로, 엘리엇 어윗(Elliot Erwitt)이 찍은 마이애미 비치에 위치한 퐁텐블로 호텔의 내부 풍경은 우리에게 사물 그 자체를 담는 사진의 진실성에 관한 역설적인 얘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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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사진을 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마이애미 비치에 위치한 퐁텐블로 호텔은 원래 프랑스에 있는 궁전을 그대로 복사해서 재현한 건축물이란 점이다. 사진 속엔 호텔의 로비인지 궁전의 거실인지 모를 모습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자코우스키가 왜 이 사진을 ‘사물 그 자체’를 설명하는 사진으로 보여줬을까? 날카로운 유머감각을 지닌 엘리엇 어윗이 찍은 이 사진을 통해 사진가가 찍은 사물 그 자체는 찍히는 순간 더 이상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닐까? 마치 모든 건축물이 진짜를 모방한 가짜에 불과한 라스베가스나 마이애미 비치의 호텔들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리얼리티와 사진의 리얼리티를 동일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리얼리티는 이미 흑백의 톤으로 한 단계 걸러진 리얼리티며, 어떤 대상은 실제보다 훨씬 과장되거나 축소된 모습으로 보여 진다. 그런 점에서 자코우스키가 쓴 첫 번째 사진의 특성을 설명하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19세기는 합리적인 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진에 찍힌 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으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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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특성 - 디테일 Detail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텅 빈 언덕과 하늘. 땅에는 공처럼 둥근 물체가 돌들과 섞여 있다. 흑백의 톤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경계선을 심장으로 끌고 온다. 어느 날의 아침일까 저녁 무렵일까. 사진은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우리 머릿속에 든 사진에 대한 신념 가운데 하나는 사진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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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을 보자. 카메라를 응시하는 병사의 무심한 눈빛. 지칠 대로 지친 영혼의 모습 같다.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까지 뒤집어쓴 너덜너덜한 군복 웃옷에 잡힌 주름이 사뭇 젊은 그의 이마에 잡힌 주름의 연장 같다. 그는 패잔병일까. 전쟁의 상흔은 사진 속에 깊이 패여 있다.
자, 첫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진은 1855년, 로저 펜튼(Rogor Fenton)이란 사진가가 찍은 크리미아 전쟁(Crimean War. 1853~56)사진이다. 제목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계곡(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이다. 이제야 확실해진다. 땅 위에 떨어진 물체는 공이 아니라 포탄 껍질이며 땅위에 난 자국은 마차의 자국이다. 제목을 보지 않고, 혹은 이 사진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고 과연 우린 이 사진 속에서 전쟁의 흔적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진은 6.25전쟁에 참전한 병사의 모습을 더글러스 던컨(Douglas Duncan)이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막 연합군이 고지를 탈환한 후, 승리의 깃발을 꽂은 후 찍었다고 한다. 승리의 기쁨이 느껴지는 구석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승리의 증거는 없다.
사진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사진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순간, 혼란은 시작된다. 구색 좋은 말맞추기의 향연이 시작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튀어나온다. 시각은 우리가 가진 감각 기능 중에서 가장 밑바닥에 속한다. 눈으로 보고 믿는 것보다, 들리는 것이 더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가. 태초에 빛이 있었다가 아니라 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엄마와 딸이 전화통화를 할 때, 막간의 침묵 안에서 본능적으로 엄마가 딸에게 너 무슨 일 있지라며 반문하는 건 어떤가? 엄마와 딸 사이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본능적인 직관이 작용한 것이다. 직관은 영적인 교감으로 가능한 영역이다. 소리가 있기 이전에 신의 영감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은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영감의 세계다.
그러므로 사진은 사건의 진실을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사진가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진실이다. 마치 객관적 역사를 담은 역사책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진은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객관적 진실을 담은 사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 속에서 왜곡되는 가치의 상대성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티모시 오설리번(Timothy O''''Sullivan)은 바위를 찍으면서 그 크기를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자를 놓고 함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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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코우스키가 사진의 두 번째 특성으로 내세운 사진의 디테일이란 현실의 파편에 불과할 뿐이며 사진가가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모아놓은 기호에 불과하다. 금전적 가치만 남은 주머니 속의 동전과 분수대 바닥에서 반짝이는 누군가의 염원을 담은 동전이 전혀 다른 빛을 발하는 것처럼, 사진가가 현실에서 주워 담은 기호들은 사진 속에서 우리를 꿈꾸게 만든다. 자, 이제 자코우스키가 ‘디테일’을 보여주는 사진들 맨 앞장에 적은 글을 음미해보시라.
“일단 스튜디오를 벗어나니 사진가는 더 이상 화가의 작품을 모방할 수 없었다. 유티첼로나 벨라스케스(Velazquez)의 그림처럼 전쟁을 연극무대로 연출하거나 다른 장소와 시간에 벌어졌던 사건들이나 그를 즐겁게 하던 장면을 다시 재구성해서 연출하는 등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 속에서 일관된 연결성을 보여주는 대상들을 필름에 담는 것이었다. 전쟁을 보여줄 수 없다면 그 목적이나 전략을 설명하거나 혹은 영웅을 묘사라도 해야 할 텐데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평범한 모습 뿐이었다. 포탄껍질이 나뒹구는 텅빈 길. 마차의 바퀴자국이 패인 진흙 바닥, 무너진 벽.
그는 직관적으로 중요한 디테일을 찾아 나섰다.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의 사진은 상징을 향해 나아갔다. 그 자체로선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사진이 끝없는 사색, 공상에의 유혹으로 그를 초대했다.


<다음호에 ‘사진가의 눈’ 제 2편이 이어집니다. 인용부호 안에 담긴 내용은 1964년 뉴욕 현대 미술관이 펴낸 ‘사진가의 눈’에서 발췌하여 번역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THE MUSEUM OF MODERN ART.1966, THE PHOTOGRAPHER''''S EYE


글쓴이 박태희는 서강대학교에서 불문학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공부했으며 번역서로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눈빛)가 있다. 현재, 계명대와 건국대에서 사진을 강의하며 사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존 자코우스키 (John Szarkowski. 1925~)


뉴욕을 현대사진의 메카로 만든 장본인
존 자코우스키는 사진사학의 권위자인 버먼트 뉴홀(Beaurmont Newhall)과 ‘인간 가족’전과 같은 호소력 넘치는 전시회로 사진의 대중화를 선도했던 에드워드 슈타이켄(Edward Steichen)을 거쳐 1962년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바통을 이어받았다. 슈타이켄의 강령이 사진의 대중화였다면 자코우스키의 강령은 사진의 이해였다.
그가 큐레이터로 있던 30년 동안 뉴욕현대미술관은 1840년대에 제작된 사진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수집한 사진의 수가 2만장에 달했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y Cartier-Bresson. 1968), 도로시어 랭(Dorothea Lange. 1966), 브랏사이(Brassai. 1968),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1971),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1972), 윌리엄 이글스톤(William Eggleston. 1976), 엔젤 아담스(1979), 으젠느 앗제(Eugene Atget. 1981~82), 어빙 펜(Irving Penn. 1984), 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1988) 등 그가 기획 전시한 굵직한 사진가의 리스트는 뉴욕현대미술관을 사진계의 명예의 전당으로 등극시켰다. 또 전시회와 함께 출판된 사진집의 서문을 직접 썼는데 이처럼 사진 이론, 역사, 비평, 사진집 서문 등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사진의 이해를 위한 전초기지를 구축했다. 위에 열거한 작가들의 회고전 외에도 다이언 아버스,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게리 위노그랜드에 대한 검증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의 입지를 위축시킬 수도 있는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기획하여 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가 기획하고 펴낸 전시회 가운데, 사진에 대한 시각을 혁신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이 ‘사진가의 눈(Photographer''''s Eye. 1964)’과 ‘현재까지의 사진(Photography Until Now. 1989~90)전’이다. 이 두 전시회는 사진 역사가이자 이론가인 자코우스키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사진예술에 대한 관점을 혁신적으로 개혁해냈다. 다시 말해, 사진예술 발전의 주체가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나 스타이켄(Edward Steichen) 혹은 WPA 그룹 뿐만이 아니라 뉴스 사진, 잡지 광고, 혹은 익명의 사진가들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임을 그는 명백히 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사진이란 점과 사진기로 찍는다는 점 외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사진들 속에서 사진의 비전은 어떤 미학이론이나, 예술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바로 사진 그 자체란 점을 우리 앞에 보여준 것이다. 
사진 발명 이후, 한 세기에 걸친 역사를 정리하고 현대사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제시한 자코우스키가 사진계에 쌓아올린 업적에 대한 평가는 유에스 데일리 신문에 난 기사의 한 구절로 대신한다.
“미국인들이 알든 모르든, 우리가 생각하는 사진이란, 모두 자코우스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월간사진 2005년 12월호에 게재


 

[이 게시물은 권학봉님에 의해 2018-04-04 21:07:16 사진조명 동영상 강의에서 복사 됨]

1 Comments
22 비목어 2015.08.25 12:45  
시간날때마다 읽는 재미가 솔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