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선 (1917-2002)은 1936년부터 함북 회령에서 사진을 시작했고, 당시 사진 활동의 주류를 이뤘던 공모전에서 1944년까지 100여점의 사진이 입상한 발굴의 사진가였다. 해서 사진가들의 입에서는 ‘회령의 정도선, 대구의 최계복’이라는 말이 오르내렸다. 그는 소위 공모전 사진, ‘살롱사진’이라 불리는 탐미적 사진경향을 대변하고 선도한 인물이었다. 한국에서 사진공모전이 처음 시작된 해는 1914년 ‘성우사진 공모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전국조직인 ‘전조선사진연맹’이 이를 활성화했고, 조선일보 등도 이에 가세했다. 해방 후에도 공모전은 한국 사진활동의 주류를 이뤘고, 1964년 이후에는 ‘국전’과 ‘동아국제사진살롱’, ‘사진협회전’ 등을 통해 세를 확장해 나갔다.

위의 <소년항공사>는 1941년에 개최된 제8회 ‘전조선사진전람회’에서 특선을 받은 사진의 또 다른 컷이다. 일본 군모를 쓴 소년들이 모형비행기를 갖고 노는 모습을 석양의 실루엣으로 처리한 사진들 중의 하나다. 당시 회령에는 항공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그 부대장은 정도선이 주도한 ‘회령사우회’의 일원이었음으로 <소년항공사>는 비행장 근처의 일본군 자녀들을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공모전 특선작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 역시 구도, 장면포착, 실루엣 노출 등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널찍하게 펼치진 저녁하늘과 소년들의 비행기는 의미론적으로도 상쾌하게 들어맞는다. “그림같이 곱게만 찍고, 그보다 더 아름답게 찍어야 되는 것”이라는 정도선의 유미주의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사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진미학은 1940년대의 역사적 현실을 비춰보면 거친 현실을 호도하고, 세계의 부조리를 미화하는 허위의식으로 나타난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세계정복의 꿈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조선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인력수급과 병참기지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사진은 하늘을 날고 싶은 소년들의 순진한 꿈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 오히려 군모를 쓴 <소년비행사>들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만들 군국주의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소위 공모전 사진은 거의 모두가 판에 박힌 듯이 세계의 미학적 해석에만 전념한다. 아름 다운 현실의 재현을 예술로 착각하는 우를 범한다. 일제와 더불어 시작된 공모전 제도는 한국 사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 상투적이고 편협한 평가기준은 사진예술의 다양한 모색에는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대규모 아마추어 사진집단을 양산했지만, 예술사진의 새로운 탐구를 가로 막는 장애물로 기능하고 말았던 것이다.    경향신문 (2006년 8월 26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