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T560FTTL ; 최초 리튬이온 베터리 TTL 스피드라이트 사용기
험한 길을 헤쳐나갔지만 가끔은 여행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 가는 길이 승용차의 한계를 시험하는 길이라 정말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약 15km 정도의 산길을 달렸는데 비포장에 길이 깊이 패여 있어서 차 바퀴가 빠지지 않게 가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한 듯 합니다. 그래서 하루밤 밖에 머무러지 못해 사진을 많이 촬영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친철한 마을 이장이자 공무원인 ‘얀’을 만나서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 있는 마을 ‘반 메리 빠께’입니다. |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보살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 저희를 위해서 잠자리를 내어 주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 계랸을 굽고 있는 모습니다. 아들이 하는 요리가 영 미덥지 못한지 어머니의 시선이 계란을 떠날 줄 모릅니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조절을 한다음 식용유를 붓고 적당히 달아 오를때 계란을 깨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계란 부침인데 촬영도 하겠다, 손님도 왔겠다 긴장이 되나 봅니다. 이 마을은 접근성이 너무 않좋아서 한국인으로는 우리가 처음 방문한 것이고 5년전에 서양인이 한번 방문한것이 마지막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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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기회가 왔을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 처음에는 ‘얀’의 할아버지인줄 알았는데 아버님이더라구요. 그도 그럴것이 어머니하고 나이차이가 20년넘게 나는 바람에 그렇게 보였나 봅니다. 이 동네의 자랑거리인 폭포구경을 했냐 길레 아직 못했다고 하니까 그럼 자기가 안내해줄 테니 같이 가지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길을 다시 올라오긴 무리다라고 하니 자신은 산 밑에 있는 큰 아들집에 놀러 가겠다는 말이 었습니다. 그래서 폭포까지 같이 가고 산 밑에 있는 큰 아들댁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의 어설픈 태국어로 하는 바람에 30분 동안 끈임없이 했던게 생각이 납니다. |
사람이 없는 명소는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 만큼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준다
| 이 마을이 자랑하는 폭포 ‘티 끄라 꾸이’ 폭포입니다. 태국인들에게 물어보니까 아마 버마말이라고 하더군요. 다중 폭포인데 이런 폭포가 8~9개 연속으로 이루어저 있습니다만 정글에 휩싸여 복잡하게 흘러 내려가는 바람에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는 없었습니다. 헬리캠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만드네요. ^^ |
검은 의상에 빨간 목도리가 인상적인 미옌족 마을
| 미엔족은 중국계 소수민족으로 전통적으로 글로는 한자는 사용하고 말은 중국어를 씁니다. 중국 윈난지방에서 주로 이민 왔다고 하는데요, 태국에서는 ‘야오’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제, 미얀마,태국 북부, 라오스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현제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샤먼의 경우 아직까지도 중국어를 잊어 버리지 않고 유창하게 사용했는데, 마지막날 저녁에는 글로 적어서 인사말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
평화로운 국경 마을에 들이 닥친 상상속의 전쟁을 치루는 한국인들
| 치앙라이 동쪽에 위치한 반 후웨이 뽀는 거의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약 60호 2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위에 보이는 산만 넘어가면 라오스땅의 국경이기도 합니다만, 완전히 정글이라 사냥할때 빼고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을에는 정글에서 곰의 습격을 받아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장애를 가진 할머니도 계셨고, 월남전때 살포된 대인지뢰 때문에 다리를 잃은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더불어, 작년 말, 300 여명의 한국인 기독교 집단이 ‘땅굴’로 한국전쟁이 일어 날것이기 때문에 피난을 왔다면서 라오스쪽 정글을 뚫고 이마을에 나타 났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이었다고 하는데 거친 열대의 정글을 지나 온 탓인지 온몸에 상처가 있었고 매우 굶주린 상태였다고 합니다. 잠자리와 식사를 대접한 마을주민들은 다음날 다른 마을로 홀연히 떠나는 그들을 바라봤다고 합니다. |
갑자스러운 방문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반겨준 마을 주민들
| 우리 팀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담당해 주셨던 ‘쏨차이 아카락파누쏜 - 37세 (하늘색 티셔츠)’입니다. 부인과 남매를 두고 있는데 큰 딸은 22살의 ‘람싸마’로 치앙라이에 거주 하고 있고 17살의 아들 ‘아위룻’은 고등학교 때문에 산아래 읍내 기숙사에 머울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유일의 선생님인 ‘우타야 문씨누언’은 51세로 미옌족이 아니고 타이족입니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고 이마을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서 그런지 마을 주민이나 다름이 없는듯 친해 보였습니다.
첫날은 저녁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간단한 저녁식사와 함께 예의 그 한국인 무리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었습니다. |
존경받는 나이듬이란 어떤 느낌을 가지는 것일까
| 다음날 본격적인 촬영이 진행되었습니다. 새벽부터 드럼통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차잔을 들고 아침인사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미옌족 새해 준비의 일환으로 키우던 돼지를 잡기 위해서 물을 끓이고 있었던 것이더군요. |
새벽아침 온기와 나누는 낯선 이의 몸게그는 생활의 활엽수
| 원라이팅으로 처리했는데요, 오른쪽에 엄브렐러를 설치한 TT560FTTL을 설치 했습니다. 안개넘어로 비추는 따뜻한 아침햇살 같은 느낌을 만드는게 목적이었고 당시 간단하게 단독군장이었음으로 조명을 하나만 들고 나온 것도 원인 이었죠. ^^ 다만 하나의 조명이라도 적당하게 자연광과 함께 사용하면 충분히 풍부한 사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거워서 그런건 아니에요.... ㅎㅎ |
국외자의 신분으로 살아온 아저씨의 주름은 누구보다 쓸쓸해 보였다
| 이 아저씨는 이민 2세대 인데 벌써 나이가 지긋하십니다. 뭔가 중국 본토의 그 전통을 가저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태국문화에 능통하지도 못한 주볁인인것 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옆에 있는 대나무 파이프에 담배를 한대 피우시고는 느긋하게 돼지 잡는 모습을 감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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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희망은 젊은이들의 솔선수범으로 싹튼다
| 동네에서 힘께나 쓰는 청년들이 앞장서서 마을을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빨래 하던 아주머니는 황급히 자리를 뜨고, 청년들이 제의식과 함께 잡아온 돼지에 뜨거운 물을 부워서 털을 긁어 내고 있습니다. 한 마을에서 청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지가 우리에게는 정말 오래된 풍경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제가 어릴때는 청년들이 앞장서서 복조리도 돌리고, 돼지나 소도 잡고 그랬던것이 생각 납니다.
이 작업은 두대의 TT560FTTL과 엄블럴러를 사용했습니다. 보시면 파란티셔츠를 입은 청년과 흰옷을 입은 중년의 아저씨 사이에 메인 조명으로 하나 설치되어 있고 반대 쪽 맞은편에 한대가 있는데 조금 약한 조명으로 반사광의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