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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큐니 1 2211 1 0

기선을 빼앗긴 미국은 사진계의 거인인 코닥을 중심으로 로체스터(Rochester)시에 모여서 미국 광학 산업을 일구고 있었다.(미국 광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코닥(Kodak), 아이렉스(Ilex), 그라프렉스(Graflex), 엘지트(Elgeet), 칼타(Caltar), 바슈엔 롬(Bausch and Lomb)이 모두 이 도시에 모여 있었다) 코닥의 렌즈 디자인은 짜이스의 텟사를 그대로 배낀 것인데 여기에 바륨(Ba) 대신 란타니움(Lanthanium)이라는 희토류 광물을 섞어 굴절율을 한층 더 높인 재료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코닥은 자기네가 만든 이 고성능 렌즈에 자랑스럽게 엑타라는 이름을 붙였고 핫셀브라드는 이 렌즈를 장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샷타가 말썽이었다. 콘탁스가 샷타 문제로 라이카에 고전 하였듯이 1600F에 있는 포칼 프레인 샷타는 문제가 너무 많은 제품이었다. 콘탁스의 샷타는 수직으로 24mm를 움직이는데 반해 핫셀브라드의 샷타는 60mm를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길어진 거리에다 최고 샷타 속도를 1/1600초가지 나오도록 해 놓으니 샷타 막이 운동량을 이기지 못하여 한쪽으로 처 박히는 엉킴(jamming)현상이 빈발 하였던 것이다. 빅터씨도 자기 욕심이 좀 과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최고 속도를 1/1000초 까지 낮춘 '핫셀브라드 1000F'모델을 후속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장은 계속 되었고 유럽과 미국의 카메라 수리점은 핫셀브라드 기종으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957년에 핫셀브라드는 기존의 디자인에 일대 변혁을 가하게 된다. 500C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새로운 디자인은 카메라의 신뢰성을 올리는 쪽으로 촛점이 맞추어 졌는데 렌즈를 코닥 제품에서 짜이스 제품으로 바꾸면서 말썽 많은 자사의 포칼 프레인 샷타도 과감히 포기하고 독일의 콤퍼 (Compur)사에서 제작한 렌즈 샷타로 바꾸게 되었다. 또 렌즈 마운트도 새로운 형태로 설계되어 1600F이나 1000F의 렌즈는 그 후에 나온 핫셀브라드에는 맞지 않게 되었다. 핫셀 브라드의 구형 렌즈 마운트는 후에 소련이 불법 복제하여 만든 '키에프 88'이라는 카메라에 채용되었다.

 

전쟁이 끝났을 당시 칼 짜이스의 모든 시설과 인원은 소련이 점령한 예나(Jena)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탈출하여 서독으로 망명한 기술자들이 스투트가르트(Stuttgart)에 모여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짜이스 회사를 재건 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에 패한 독일인들은 생계를 위하여 낮은 임금도 마다 않고 눈물 겹도록 일해서 얼마 안 있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려는 참이었다. 당시 독일인이 얼마나 근검 절약하였는지는 담배 불을 붙이는데 최소한 다섯 명이 모일 때 까지 기다렸다가 성냥 하나로 돌려가며 불을 붙였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당당하게 실렸던 신빙성있는 예기인데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의 우리나라가 새마을 운동을 한참 전개하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했던 점은 왜 독일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형씨, 불 좀 부칩시다..."하며 담배와 담배를 마주 대고 불 부칠 줄을 몰랐느냐는 점이었다. 아뭏든 전후 독일 경제 부흥의 신호탄이 된 '폭스바겐'자동차를 선두로 값싸고 품질 좋은 독일제 상품들이 유럽 시장에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반면에 승전국인 미국의 달러화는 전후에도 엄청난 강세를 유지 하였다. 이것은 곧 엑타 렌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핫셀브라드는 결국 렌즈 마운트를 개조해야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불리한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값싼 짜이스 렌즈로 바꾸고 말았다.

 

한편 이와 똑같은 상황이 그 후 70년대 말에 다시 한번 벌어지었는데 핫셀브라드사는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올라버린 짜이스 렌즈를 포기하고 일본 니콘사의 니콜(Nikkor)렌즈를 채용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던 것이다. 중형 카메라용 니콜 렌즈는 이미 젠자 브로니카(Zenza Bronica)의 S2나 EC-TL같은 기종에 채택되어 나름대로 성능을 인정 받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두 번째 결단은 검토로서 끝나고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마터면 오늘의 핫셀브라드 애호가들이 일제 렌즈를 쓰게 될뻔한 사건이었다.

 

이 500C기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롤라이 제품을 단숨에 시장에서 몰아내었다. 짜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두 회사가 다 자사의 렌즈를 사용하므로 누가 이기던 상관 없는 싸움이었겠지만 롤라이로서는 두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통렬한 일격이었다. 롤라이는 수십 년간 부동의 위치에서 쌓아온 명성을 너무 믿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전통만 고집하고 있는 사이에 시장이 등을 돌려 버린 것이다. 사실 롤라이는 핫셀브라드의 1600F가 샷타 문제로 고전을 하고 있을 때 이 기종을 제압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중요한 시기에 롤라이는 뭘 믿고 그렇게 당당했는지, 손에 들어온 기회를 전통과 고집 때문에 놓친 것이었다. 1966년이 되자 롤라이가 뒤늦은 반격에 나섰다. 1948년에 핫셀브라드1600F가 나온 지 무려 18년 만이었다. 롤라이는 핫셀브라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직원을 상대로 거사적인 디자인 공모를 하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모아 놓고 검토를 하였는데 35카메라를 그냥 뻥튀기하여 키워 놓은 것 같은 것에서부터 당시 기술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첨단 미래형 카메라까지 다양하였다. 그 중에서 최후까지 남아 경합하던 두개의 디자인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SL66이고 다른 하나가 SLX이다.

 

(롤라이후렉스 SL66E)

 

(촛점 조절, 이중 바요넷, 틸트, 내장된 노출계)

 

시장에 먼저 나온 것은 SL66인데 핫셀브라드에 비하여 여러가지 장점을 갖춘 우수한 기계였다. 먼저 SL66은 촛점을 맞출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헬리코이드 링(Helicoid ring) 대신에 주름 상자를 달아 엄청나게 길게 연장이 되도록 하였다. 여기에다 렌즈를 꺼꾸로 붙일 수 있는 이중 바요넷 마운트를 만들어 대배율의 접사 기능을 추가 하였다. 또 마운트를 상하로 8도씩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대형 카메라에서나 가능한 틸트(Tilt) 기능을 구현하였다. 중형과 소형을 통틀어 이런 틸트 기능을 가진 카메라는 지금까지도 이 것 뿐이다.

 

샷타는 포칼프레인 샷타로 1/1000초 까지 가능한데 롤라이의 포칼프레인 샷타는 독일제답게 정밀 기계 공학의 정수로써 아주 신뢰성이 높은 것이었다. 롤라이SL66이 나오자 이 오래되고 명성 높은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던 롤라이 팬들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기쁨도 한순간 일뿐..... 롤라이SL66은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핫셀브라드의 거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지금도 핫셀브라드의 가격이 싼 게 아닌데 그 당시야 오죽 했을까? 롤라이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라면 가지기 힘든 물건이 되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1966년이라는 시기도 너무 늦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장 점유율을 가진 상태에서 신제품으로 반격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물러난 시장을 다시 공략한다는건 두 배의 노력으로도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 것이다. 핫셀브라드는 500C에 이어 500CM, 500EM, 2000FC등으로 신제품을 계속 내 놓으며 기세를 올리고 롤라이의 사정은 날로 악화되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1974년이 되자 SLX가 발매 되었으나 시장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1981년 11월 6일 롤라이는 드디어 도산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한 기업의 흥망을 놓고 너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역사의 방향은 기회가 주어진 순간에(그 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잔인하게 돌아서 버리는 것이다.

 

워털루에서 웰링턴 장군을 덥친 나폴레옹도 그의 부하 장군이 전선의 북서쪽을 삼일간이나 헤매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프러시아 지원군을 받은 영국군에게 패배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루쉬(Grouchy)라는 이름의 약간 답답한 프랑스 장군은 블뤼허(Blucher) 장군이 이끄는 프러시아군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띄고 병력의 삼분의 일을 데리고 나갔는데 막상 워털루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없는 프러시아 군만 찾아 다녔던 것이다.

 

"왜?"

 

"전투가 벌어지면 돌아오란 예기는 안 했으니까!"

 

그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에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써준 명령을 맹목적으로 지키느라 그가 패전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찾던 프러시아 군은 워털루에서 포성이 들리자 나폴레옹군의 옆을 치기 위하여 워털루 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유럽 역사의 방향은 영원히 바뀌어 버리었다.

 

도산한 롤라이를 구한 것은 United Scientific Holdings,Ltd라는 영국 회사였다. 그후 몇 차례 더 주인이 바뀌다가 드디어 한국의 삼성 그룹이 인수하여 이제는 한국(?)회사가 되었다. SL66은 SL66E를 거쳐 SL66SE가 된 다음 생산이 중단되었고 SLX는 SL6006을 거쳐 SL6008로 변하면서 다시 상업 사진가들의 애호를 받게 되었다. 롤라이로서는 무려 30여년 만의 성과다. 6008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진가들의 호응을 받게 된 것은 이제 세월도 많이 변하여 바야흐로

 

전자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SLX이후로 시도해온 중형 카메라의 전자화가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히 경쟁이 말도 못하게 치열한 상업 사진쪽에서는 가격이 높더라도 헐 씬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기종을 찾게 된 이유도 있다. 그리고 이제 핫셀브라드가 너무나 흔해져서 왕년에 '전문가의 상징이자 프로의 자존심'같았던 핫셀이 이젠 '아마츄어가 흔히쓰는'기종이 된 까닭도 있다. 어쨌던 상업 사진가 들은 자신의 스튜디오에 뭔가 흔히 볼 수 없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카메라를 하나쯤 두고 싶어 하는 법이다.

 

(롤라이후렉스 6008)

 

내가 처음 롤라이SLX를 구입한 것은 뉴욕의 'Camera Brokers'라는 가게에서 였다. (나는 미국으로 출장 갈 때마다 카메라를 하나씩 사왔다. 보통은 50불에서 100불 미만의, 장식품으로나 쓸만한 고풍스러운 옛날 카메라 들이었는데 이 롤라이를 살 때 만큼은 부담이 엄청났다) 그리고는 아틀란타(Atlanta)에 있는 KEH라는 가게에서 SL66으로 바꿨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그리고는 그 다음해에 캘리포니아 산호세(San Jose)에 들러 핫셀브라드 500CM을 구입하였다가 결국 다시 롤라이SL66E으로 바꾼 뒤 그대로 정착하였다. 이렇게 방정 맞게 오락 가락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렇게 오도 방정을 떤 끝에 깨 닳은 것은 좋은 사진을 찍는 데에는 어느 기종으로도 한점 모자람이 없을 뿐 아니라 진짜로 모자라는 것은 자신의 '실력'뿐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핫셀브라드500CM은 유럽의 젊은 귀족 부인 같이 경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롤라이SL66E는 사냥개를 데리고 숲을 산책하는 중년의 귀족처럼 둔탁하고 못생겼다. 그러나 나는 롤라이의 디자이너를 한 수 더 쳐주고 싶다. 롤라이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도 싫증이 나기는 커녕 점점 더 믿음직 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절제된 미학은 눈에 튀는 멋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아니면 이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소박한 이조 백자가 고려 청자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눈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롤라이 SL66E는 4X5카메라를 사용하기 전까지 나의 주력 장비로 애용되었다가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책장에 진열되어 폼만 잡고 있다. 한동안은 이 장비를 팔아서 다른 물건을 사는데 보탬이 되어볼까도 생각했었다. 이렇게 좋은 장비를 사진 찍는데 쓰지 않고 그냥 얹어 놓기만 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고.... 돈도 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팔고 나면 다시 사게 될 것 같지 않아서 아직은 그냥 두고 있다. 롤라이 SL66계열의 기종이 핫셀브라드와 비교해서 사용상 차이가 나는 부분은 촛점을 맞추는 부분인데 롤라이는 바디의 왼쪽 후방에 있는 노브(knob)를 돌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표준 렌즈를 붙여서 쓸 때는 모르는데 망원을 붙여서 손으로 들고 찍으려면 영 불편하다. 카메라 앞부분이 너무 무거워져서 손으로든 채 촛점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롤라이는 삼각대에 올려 놓고 찍는 장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촛점 노브가 후방으로 간 덕분에 롤라이는 대배율 접사를 할 수 있고 틸트 기능도 넣을 수 있다. 반면에 핫셀브라드는 렌즈에 붙어 있는 링을 돌리니까 손으로 들고 찍기는 아주 좋다. 그리고 롤라이는 사진을 찍고 나면 보통 카메라처럼 화인더가 다시 보이지만 핫셀500CM의 화인더는 한 장 찍으면 먹통이 되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핫셀브라드의 이런 구조는 렌즈 샷타를 사용하는 기종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포칼프레인 샷타를 가진 핫셀브라드2000F 기종은 화인더가 다시 보인다)

 

롤라이 SL66E과 SL66SE에는 노출계도 들어 있는데 상당히 정확하다(SL66에는 없다). 그리고 내부 구조가 기계식으로 되어 있어 노출계와 상관없이 카메라는 잘 동작한다. 이것은 야외에서 밧데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예기.

 

풍경 사진을 많이 찍는 나로서는 롤라이가 핫셀브라드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핫셀브라드는 사용상에 있어서 네가티브가 크다는 것 이외에는 35미리 카메라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롤라이는 '큰 35미리'라고 하기보다는 '작은 4X5카메라'에 가깝다. (롤라이와 핫셀의 디테일한 부분) (메거진, 촛점 , 틸트, 레트로 포커스, 샷타,)

 

두 기종 다 중형으로서는 최고급이라는 반열에 올라 있다. 중형 카메라가 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상의 품질을 보장해 준다. 그리고 신뢰성 있는 구조로 오랜 사용에도 무리 없이 잘 동작한다. 그러나 그런 성능을 염두에 넣고 생각하더라도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진기로 돈벌이에 나선 사람은 하나쯤 가지는 것이 좋다. 상업적인 의미에서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폼나는 카메라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해서 "이노무 세상 살아서 뭣하나..."하는 기분이 드는 사람에게도 하나 권하고 싶다. 그래서 이왕이면 롤라이를 사는 게 좋다. 핫셀브라드로 폼잡기는 이젠 틀렸고 또 롤라이는 한국 회사니까...

 

이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은 좀 더 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좋은 사진은 사진기의 종류나 유명한 정도와는 무관하게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

 

 

3. 린호프? 맥주 이름인가벼!

맥주 회사가 아니다. 엄청나게 비싼 카메라를 만드는 독일 회사인데 의외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 4X5이상의 대형 카메라에 한정 되어 있기 때문인데 ('린호프617'이라는 중형 파노라마 카메라도 하나 있긴 있지만) 아무튼 사진 쟁이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종은 아니어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엔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사진기와는 달리 나는 이 카메라를 소유해 본적이 없다.

 

대형 카메라를 쓰기 시작한 이상 '나도 질소냐..'하고 '린호프 테크니카(Linhof Technika)'를 하나 사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내가 좀 더 일찍 대형 카메라에 입문했더라면 곗돈을 쪼개서 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라이카와 콘탁스, 핫셀브라드와 롤라이후렉스를 거치면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 카메라에 욕심을 부려봐야 아무 쓸모 없는 일이고 공연히 주머니만 허허하게 만든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 작가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스튜디오 같은데 붙박이로 있는 모노레일 카메라가 대부분이어서 '린호프 테크니카'같은 카메라를 야외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도 나는 테크니카를 사용하는 분을 알고 있어서 이 카메라를 황송한 마음으로 만져 볼 수가 있었다.

 

(린호프 테크니카와 렌즈군)

 

'린호프 테크니카'에 대한 예기는 앞서 예기한 카메라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게 진행해야 한다. 그것은 중형이나 소형과는 전혀 틀린 관점에서 그 메카니즘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카메라는 먼저 정해진 렌즈가 없다는 것이 틀리다. 니콜 렌즈는 니콘에 맞고 캐논 렌즈는 캐논에 맞고 로콜 렌즈는 미놀타에 맞는다. 그러나 대형 카메라는 아무 렌즈나 아무 바디에 다 맞는다. 대형 카메라에 쓰이는 렌즈는 독일제 슈나이더(Schneider)나 로덴스톡(Rodenstock) 제품이 제일 흔하지만 19세기에 만들어진 렌즈라 해도 사용하겠다는 의향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중소형 카메라에서처럼 렌즈의 명성에 따라 사진기의 값어치가 오르고 내리는 일이 없다. 내가 쓰는 50만원짜리 '다찌하라'나 400만원짜리 '린호프 테크니카'나 같은 렌즈를 사용하므로 기본적으로는 같은 품질을 가진 네가티브를 만들어 낸다.

 

(다찌하라와 렌즈군)

 

대형 카메라의 성능을(이에 비례하여 값을) 결정하는 것은 '무브먼트'이다. 무브먼트는 수평 이동(Shift), 수직 이동(Rise and Fall), 좌우 회전(Swing), 기울임(Tilt)으로 되어있고 이것이 렌즈가 붙게 되는 앞 판FrontStandard)과 필림이 들어가는 뒷 판(Back Standard)에 각각 적용 되도록 되어있다. 이 무브먼트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느냐,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테크니카는 '필드 카메라'로서는 보기 드물게 긴 주름 상자와 폭 넓은 무브먼트, 그리고 무브먼트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어들로 구성 되어 있다. 그에 비해 '다찌하라'라는 카메라는 일본산 벗 나무로 만들어 졌는데 짧은 주름 상자에 중간 정도의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고 손으로 대충 밀고 당겨서 이 무브먼트를 조정하게 되어있다. 그래도 다찌하라가 한가지 내세울 점은 있는데 금속으로 된 테크니카보다 가볍다는 것이다. 테크니카에서 특이한 점은 보통의 필드 카메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정교한 연동 거리계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자기를 뒤집어 쓰지 않고도 촛점을 쉽게 맞출 수 있게 되어 있다. 단 대형 카메라에만 있는 장점인 무브먼트를 사용하려면 이 연동 거리계가 아니라 촛점 유리판을 들여 다 봐야 한다.

 

(테크니카 디자인, 다찌하라 디자인 접사)

 

(테크니카의 나사들, 주름 상자 전개, 무브먼트)

 

(크라운 그래픽, 손으로 들고 찍는 대형 카메라)

 

이 정도의 장점 때문에 8배나 더 비싼 장비를 구입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스튜디오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야외로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요량이면 제일 중요한 것이 무게이기 때문이다. 소형 카메라야 덩치가 다 그만 그만 하니까 무게가 차이가 나도 잘 못 느끼지만 대형 카메라는 욕심껏 가방을 꾸리다가는 혼자서 들 수 없을 정도까지 될 수 있다. 이런 가방을 메고 촬영지를 돌아 다닌다는 것은 사진을 찍겠다는 의도는 별로 없고 체력 증진을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가방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슈나이더의 90미리 슈퍼 안규론(Super Angulon)을 제외하고는 작고 가벼운 구형 렌즈을 선택하였다.

 

둘 다 1950년대에 생산된 미국제인데 하나는 그라프렉스(Graflex)사의 135미리 옵타(Optar)이고 다른 하나는 코닥(Kodak)의 명기 203미리 엑타(Ektar)이다. 이미 40-50년은 족히 된 물건들인데 신형 렌즈와 비교해 보면 크기와 무게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능에서도 차이가 난다. 신형 렌즈는 4군 6매의 플라즈맡(Plasmat) 디자인이고 앞 유리와 뒷 유리가 커서 무게도 꽤 나가지만 더 선명하고 포괄 범위(Image Circle)도 넓다.

 

구형 렌즈는 옵타의 경우는 3군 4매의 텟사 디자인(Tessar Design)이고 엑타의 경우는 4군 4매의 알타 디자인(Artar Design)이다. 최신형 플라즈맡 디자인의 렌즈에 비하면 해상력도 떨어지고 포괄 범위도 적지만 대형 카메라쯤 되면 이런 성능 차이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네가티브가 충분히 크다. 그리고 구형 렌즈는 신형 렌즈에는 없는 독특한 매력(주로 약간 남아있는 구면 수차와 보다 간단한 디자인에서 나오는 높은 콘트라스트에 의한 부드러운 묘사력)도 있기 때문에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옵타, 엑타, 텟사 렌즈 와 신형 지로나 렌즈)

 

(알타 디자인 과 플라즈맡 디자인)

 

하지만 내가 만약 필드 카메라가 아닌 모노레일 카메라를 구입해야 한다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린호프의 '테크니칼단(Technikardan)'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테크니칼단은 모노레일을 3단으로 접을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 배낭에 쉽게 들어가 야외에서 사용하기도 좋고, 무브먼트가 제한되어 있는 테크니카에 비하여(필드 형 카메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무한정에 가까운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저렴한 가격의 모노레일 기종은 레일이 접히지 않기 때문에 배낭 하나에 장비를 꾸려 넣기 힘들고 또 쇠파이프 같이 생긴 레일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들고 다니기는 무리이다. 그 쇠파이프를 호신용으로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내가 주로 찍는 풍경 사진에는 테크니칼단의 화려한 무브먼트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직접 써보지 않은 장비이기 때문에 린호프에 대한 예기는 부실하지만 이 정도로 해두자.

 

(대형 카메라의 렌즈)

 

(슈나이더 렌즈)

 

(짜이스와 괼츠의 렌즈)

 

내가 비싼 카메라를 별볼일 없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쓸모없는 물건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싼 카메라의 기능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능과는 상관없이 가격에 현혹되어 '그것을 사야만 사진이 잘 된다' 고 생각하는 것을 말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경험상, 사진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라 단언할 수 있다.

 

나는 4X5용 확대기로 오래된 오메가D2를 사용해 왔다. 이 확대기는 너무 오래되어서 수평이 맞지를 않는다. 즉 필림이 들어가는 네가티브 케리어 와 렌즈가 매달려 있는 렌즈 마운트와 인화지가 놓이는 바닥판이 전혀 평행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 이렇게 수평이 맞지 않으면 인화지의 중심 부분에 촛점을 맞출 때 양끝이 촛점이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 확대기를 쓰려면 이젤 밑에 책이나 볼펜을 이것저것 끼워 넣어서 수평을 최대한 맞춰야 한다.

 

그래도 네가티브 케리어와 렌즈 마운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둔다.물론 이 확대기를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면서 수평을 잘 맞출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럭 저럭 열악한 상태로 4년 동안은 잘 써왔다. 기본적인 인화는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전시회에 사용할 16X20이상의 인화를 하려니까 도저히 쓸 수 없는 지경이다.

 

나로서는 정이 많이 들은 물건이지만 이 오래된 확대기를 은퇴시키고 200만원짜리 새 확대기를 하나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마누라도 사진 쟁이인데다가 오메가D2의 수평을 맞추느라 확대 작업 때마다 끙끙거리는 것을 보아온 터라 이 과감한 투자 계획을 쾌히 승낙하였다. 나의 대형 카메라가 50만원 짜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대기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니 어쩌겠는가? 아마도 내가 가진 장비 중 두 번째로 비싼 물건이 될 것이다. (첫번째는 책장 위에 올라가 장식품이 되고만 롤라이후렉스 SL66E다)

 

사진 장비를 사는 것은 사진 쟁이들에겐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것을 사던지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구별할 줄 아는 혜안은 꼭 필요하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이러한 기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난 뒤에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통하여 비로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암실 동반자, 오메가 D2. 조금 손을 보면 아직도 완벽한 확대기로 동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쇳덩이를 분해 조립하여 손을 보는 것보다 마누라를 졸라 새 확대기를 사는 편한 길을 택했다.)

 

1997.5.26 김종욱



 

1 Comments
3 심바 2017.08.18 10:53  
아침부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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